낙선했지만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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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중매로 만나 결혼하고 쉼 없이 농민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남편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제가 꿈꾸던 결혼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살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이고, 결혼 잘못했구나. 내 인생 망했구나’가 어쩌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제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모양입니다. “나가서 당신 맘대로 하세요. 나는 애들과 집을 지킬 테니”라는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저도 모를 일입니다.

그날부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눈에 안 보이면 남이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다’. “딴짓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물으시겠지만 허튼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늘진 곳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남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록 6·4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들었지만 인생이 무조건 즐거우면 그 인생은 싱거운 거라며 남편 등을 토닥거려줬습니다. 무뚝뚝한 남편 따라 무뚝뚝해진 마누라가 두들겨 주는 거친 손일 텐데도 고마웠는지 남편 눈에서 눈물을 본 것 같습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짧은 말에 저는 난생 처음으로 큰 소리 내어 실컷 울었습니다. 마누라에게 들킬까 봐 편하게 울기도 힘든 남편 대신 맘껏 울어주고 싶었습니다. 며칠 외출도 삼가고 있던 남편이 툭툭 먼지를 털어내듯 다시 농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제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제 어깨 무게만큼 남편은 더 힘든 분들의 어깨 위에 올려진 무게를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고자 하는 모습에 존경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남편을 지지해 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고 지지하지 않은 분에게도 반성의 기회를 준 것에 감사 드립니다.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지 자꾸만 행복하단 생각이 듭니다. 임광웅씨 수고하셨습니다.

아산시 인주면 모월리 이홍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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