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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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역사학자 중에는 장수한 사람이 많다. 최장수의 「랑게」는 92세에 죽었다. 「드로이젠」 은 77세, 「몸젠」은 87세, 「브르킬르」가 80세. 그들은 죽는 날까지 역사를 썼다. 「마이네케」도 83세까지 샅았다.
일찍 죽었다는 「람프레히트」와 「트라이츠케」도 60은 넘었다. 여기에 비겨 시인·화가·음악가 뿐만아니라 다른 인문과학자들도 60을 넘기기가 어려웠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역사는 쉴사이 없이 바뀌어진다.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러니 역사가는 되도록 오래 살아야한다. 그리하여 끝장을 봐야한다.
이런 집념이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오래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탓만은 결코 아니다.
「처칠」이 수상시절에 『위대한 정치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은 뭣이냐』는 질문을 기자로부터 받았다. 『그건 내일 내년 또는 10년후를 예언할수 있는 재능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틀어졌을 때 그걸 그럴싸하게 돌러댈 수 있는 재능이다.』
정치가만이 아니다. 정치의 현실은 때로는 학자들까지도 둘러대게 만든다.
중국의 옛 속담에 『지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는 게 있다.
이것을 손문은 『지하기는 어렵고 행하기는 쉽다』고 살짝 바꿔놓았다.
그러자 호적은 『지하기는 어렵고 행하기 또한 쉽지 않다』고 바꿔 말했다.
그러나 노신은 다시 『지하기는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입장을 벗어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진실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고 깊숙이 숨겨져 있다. 그것을 캐내자면 역사의 마지막 입회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의 참다운 증인은 역사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는 그저 입회인이 될 뿐이다.
유대인의 우화에 이런게 있다. 옛날에 어느 임금이 온 국민을 불러놓고 대연회를 열기로했다. 음식은 왕이 마련하고 참석자는 그저 포도주 한병씩만 가져오도록 했다.
잔칫날이 왔다. 사람들이 가져온 술들은 모두 큰 다루에 모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그 포도주를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은 맹물이었다. 누구나가 다 남들은 포도주를 가져올 것이니까 자기 한사람쯤은 술 대신 물을 가져와도 모르겠거니 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다 역사의 입회인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나가 다 바람이 자고 비가 멎어, 물이 맑아진 다음을 기다려 냇속의 조약돌을 주울 수도 없다.
다만 누구나가 다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려면 모두가 다 포도주를 가져와야한다. 누구나가 역사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멋진 잔치를 모두가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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