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이 한 장의 명반』『장자』 쓴 '한국의 르네상스인' 안동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1세대 음악평론가로 꼽히는 안동림(사진) 전 청주대 영문과 교수가 지난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급성폐렴으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1960년대부터 서양음악 해설서를 비롯해 10여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내놓은 음악평론가이자 영문학자, 동양고전 번역가로 활동했다.

 1932년 평남 숙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음악을 접했으며 남쪽으로 피난온 후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도 늘 서양음악을 즐겼다. 70년대 후반에 낸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은 서양음악 해설서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서양음악 280여 곡과 대표적 음반들을 소개한 책이다. 출판사 현암사의 김수한 편집주간은 “지금껏 수십만 권이 판매된 책”이라 소개했다. 초판을 얼마나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개정판 22쇄를 기록하고 있다.

 고전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는 『장자』 번역본이다. 70년대 초 번역을 시작해 93년 국내 최초의 완역본을 냈다. 2005년 교수신문은 전문가 10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 고인이 번역한 『장자』를 최고의 번역본으로 선정했다. 쉽게 읽히며 주석이 풍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밖에도 불교 화두집인 『벽암록』을 78년 번역했다.

 고인은 음악과 동양 고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한국의 르네상스인’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50년대에는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이후 신문사 기자, 출판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칠순이 넘어서도 집필을 계속했다. 70세에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 77세에 『불멸의 지휘자』를 새로 내놨다. 2011년 79세에 출판한 『내 마음의 아리아』는 고인의 마지막 저작이 됐다. 여든 넘어 『당시(唐詩) 감상』 집필을 시작했지만 끝을 보지 못했다. 당시 100편을 해설하려던 계획은 50여 편에서 멈췄다.

 고인은 “번거롭지 않게, 소박하나 따뜻하게” 장례를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족은 이 뜻을 받아 한동안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유골은 종이함에 담겨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의 장식 없는 묘에 안장됐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