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04] 발로하는 축구경기서 더욱 빛난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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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볼은 양팀 수문장의 손을 단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발로 하는 축구에서 손도 역시 그만큼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무승부 한판이었다.

15일 새벽(한국시간) 벌어진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셋째 날 이탈리아와 덴마크의 C조 첫 경기에서 양팀은 경기 전후반 결정적인 골 찬스를 얻었음에도 그 때마다 골키퍼들의 선방에 막혀 득점하지 못한 채 0대 0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탈리아의 수문장 부폰과 덴마크의 소렌센은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을 보이며 최전방 공격수들의 발재간을 무력화했다. 2002년 월드컵때 한국전에서 골을 뽑아냈던 이탈리아의 원톱 비에리의 헤딩 슛과 공격형 미드필더 또띠의 중거리슛은 번번히 골대를 빗나가거나 소렌센의 품안에 안겼다. 이에 질세라 부폰은 덴마크의 토마손과 롬메달이 쏘는 슛을 연이어 펀칭으로 퉁겨냈다. 덕분에 골 맛을 보지 못한 양팀의 공격수들은 연신 입맛만 다셔야 했다.

경기 초반 주도권은 덴마크가 잡았다. 전반에 볼 점유율이 62%대 38%에 이를 정도로 볼은 덴마크 진영으로 넘어오는 횟수가 적었다. 이탈리아는 20여분이 지나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볼 지배권은 곧 덴마크가 다시 가져갔다. 전반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와 또띠의 집중력 있는 공격은 덴마크가 전반 내내 펼친 공격 보다 인상적이었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6시가 넘어서도 33도를 웃도는 더위는 선수들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 보다는 북유럽에 위치한 덴마크 선수들이 날씨에 영향을 더 받은 듯 후반이 되면서 경기의 주도권은 서서히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덴마크 진영에서 볼이 구르는 시간이 전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었고, 이탈리아 선수들이 보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연신 공중볼을 머리로 따냈던 비에리를 비롯 양팀의 공격수들은 결정적인 찬스에도 골키퍼를 뚫지 못했고 경기는 대회 2번째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편, 덴마크 팬들은 관중석 한 켠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에 져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이탈리아를 약올리는 재미난 광경이 펼쳐졌다. 강팀은 슬로우 스타터라 하지만, 그리스에 패배한 포르투갈처럼 첫 경기를 잘 치르지 못한 이탈리아의 팬들은 경기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 덴마크 팬들이 경기 후 박수를 보내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Joins.com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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