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페인과의 전쟁서 이겨 기지사용관 획득|미-쿠바 쌍방의 사전합의 없이는 폐쇄 못해|남북「아메리카」의 공산화 막는 방파제 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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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쿠바」주둔소련 군(약 5천명) 문제를 놓고 미국은「현상의 변경」을 요구했고 소련은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해군기지 축소를 철수의 조건으로 내놓아 팽팽히 맞서있다 미국에 대한 소련측의 역공쟁점이 된「관타나모」미군기지는「쿠바」동남쪽에 자리잡은 1백90평방km 면적의 천연요새항구다.
항만은 작은 주머니형으로 수심이 깊은데다 고입구가 좁아 폭픙 등에도 안전하여 지형적으로도 최적의 군사적 잇점을 갖추고있다.
1898년 미·「스페인」전쟁 때 이 곳을 처음 발견한 미국은「스폐인」군을 진압하고 1899년부터 3년간 「쿠바」에 군정을 실시하다가 독립시기기 1년 전인 1901년「플라트 수정조항」을 「쿠바」헌법 부칙에 첨가, 「관타나모」항을 해군기지로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정식조약은 l903년에 체결됐는데 기지사용료는 연간 2천「달러」였지만 그 뒤 증액됐다.
34년「플라트 수정조항」이 폐기됐으나 미국은 같은 해 5월에 양국이 항의하지 않는 한 효력이 계속 된다는 내용의 조약을 새로 체결, 지금까지 계속 이 기지를 사용해 왔다.
「관타나모」기지를 둘러싼 미·「쿠바」간의 분쟁은 58년부터 시작됐다.
「바티스타」독재자에 항거한 「카스트로」혁명군은 미국이 「바티스타」정권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 기지 밖을 항해하는 미해군과 선원들을 체포했으며 기지용수보급을 끊기까지 했었다.
59년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는 이 기지를 미제국주의의 표본이라고 규탄, 철거를 요구했으며 61년부터 62년의 「쿠바」위기 중 미측은 기지의 해·공군력을 더욱 증강시켰다.
64년에「쿠바」가 또 다시 기지용수를 끊자 미측은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공장을 차려 이에 맞섰다.
「관타나모」기지는 「파나마」운하로 통하는 주요통로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인데다 「카리브」해 및 중남미해항을 항해하는 미해군함정의 연료보급기지로서도 중요하지만 「쿠바」 공산화이후는 남북「아메리카」를 공산주의로부터 지키는 새로운 「먼로」주의의 전초기지가 돼있다.
해군항구와 비행기지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주둔병력은 2천8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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