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를 살리나, 송림을 구하나|양양·춘성 두 곳 만여 평 분비물로 시 들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로·왜가리의 서식지가 보호조의 분비물로 시들고 있다. 이대로 두면 3백12년을 이어온 무성한 숲도, 보호조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였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보해리의 4천여 평과 춘성군 동면 만천2리 9천여 평의 우람한 송림.
초계 정씨와 밀성 박씨가 각각 11대·9대째 길러 온 아름드리 소나무가 봄이면 찾아 드는 수천 마리의 백로·왜가리 떼 분비물로 매년 50∼1백여 그루씩 말라죽고 있다. 분비물에는 인(인)성분이 많고 그것이 다량으로 식물의 잎을 덮기 때문에 식물이 죽는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들 서식지도 잃고 백로·왜가리도 잃지 않겠느냐고 주민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저 많은 새떼를 분가를 시키거나 어디로 옮겨 솔밭을 살릴 방법은 없겠습니까.』천연기념물 229호로 지정된 백로·왜가리 서식지인 양양군 현남면 보해리 4천여 평의 울창한 송림을 하얗게 뒤덮은 2천여 마리의 백로·왜가리 떼를 가리키며 털어놓는 주인 정상철씨(30·농업)의 안타까운 하소연이다.
백로·왜가리의 분비물이 독해 인근 숲에는 뱀마저 얼씬하지 못한다.
3백12년 전 11대조가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손수 심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자 날아들기 시작한 왜가리 떼에 백로까지 곁들여 이젠 2천여 마리로 늘어났다. 이름까지 학산. 새의 무리가 늘어나자 이들의 배설물양도 엄청나 7∼8년 전부터 아름드리 소나무가 해마다 수십 그루씩 죽어 가고 있다.
정씨 가문이 11대에 걸쳐 3백12년을 이어오는 동안이 학 산에는 백로·왜가리 떼가 계속 찾아왔고 지금은 우리나라 14개 서식지중의 하나가 됐다.
왜가리가 둥지를 틀면서부터 정씨 가문은 재산이 불어나고 자손이 번창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가문의 보배로 중히 여긴다.
11대조가 4형제 중 막내로 한성에서 이곳에와 자리잡았는데 지금은 이곳이 오히려 종가처럼 돼 있다.
춘천근교 춘성군 동면만 천2이. 밀성 박씨 문중 산 9천여 평의 송림도 같은 시련을 겪고 있다. 5천여 마리의 백로·왜가리가 심할 때는 한해 50여 그루의 2백년 생 노송을 죽여 놓고 간다.『머지않아 저 솔밭이 고목등걸로 꽉 차겠다』며 박용현씨(45·농업)는 걱정이다. 9대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정성 들여 가꾸어 온 가문의 솔밭이 깡그리 말라죽게 됐다.
백로·왜가리 떼가 이곳에 깃 들기 시작한 것은 1백20년 전인 박씨의 4대조 때부터였다.
새를 보호하고 솔밭도 살리는 일이 이 즈음 박씨 문중의 숙제가 됐다.

<양양=장창영, 춘성="이희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