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아랍권 反美 달랠 뒷수습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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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함락으로 이라크전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지도층은 짐짓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세계의 이목을 살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이념적 토대가 된 신보수주의 정책의 나팔수로 통하는 언론인 로버트 케이건은 10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이번 전쟁의 승패는 오늘의 승리가 아니라 내일부터 세계가 이 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내심 느긋해 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경종을 울렸다.

현재 워싱턴 정가는 ▶이라크에서 끝내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과▶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의 관계 재정립▶중동지역의 반미감정 확산 등 세가지를 가장 염려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 매파 인사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최근 "생물.화학무기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가 이번 전쟁의 더 큰 정당성"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의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는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타임스는 10일자 사설을 통해 "반드시 생물.화학무기를 찾아내야 한다"면서 "우리는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수수께끼를 세계인들 앞에서 풀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을 도와주지 않은데 대한 보복 심리나 서운한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비록 밉지만 프랑스와 독일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주부터 브뤼셀을 시작으로 유럽을 돌면서 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이라크 전후 처리과정에 대한 유럽의 참여 여부가 관계 회복의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아랍권의 반미감정 증폭 우려와 관련,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왕조 국가들이 상당수인 중동국가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걱정"이라면서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경우 가만히 놔둬도 민주.자유화 바람이 중동을 휩쓸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의 '민주화 도미노 현상'에 대한 기대는 중동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순진한 발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은 바그다드가 함락된 9일 '후세인 정권 추종자에 대한 전범 처리'를 요구하는 공동 결의안을 즉각 제출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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