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암<문충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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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비상의 나래 꺾이우고 몇만년이냐 바위로 굳어져
그대 파도소리에 이리저리 깨어나며 나의 잠 한밤도 이룬적 없었나니
이제는 풀어다오 제주바다여
유형의 세월속 두어 뼘 남은 목숨 하늘나라로 날아가게 해다오
지상에 온 뒤 사철 비바람 눈보라 따스한 햇살에 아침 저녁밤마다
오욕의 죄를 씻어왔나니 나의 죽음 되찾아가게해다오
차라리 눈보라 치는 날 하늘로 더운 심장 찬 비를 뿌려 무지개를 만들까
그 무지개 밟아 가는 날 만상은 잠들거라
그대들 잠결을 소리없이 별빛도 살며시 두고 가리니.

<시의주변>
『용두암』은 제주시 도심 서북쪽 바닷가에 있는 마치 용을 닮은 거대한 바위로 승천하지못하는 슬픈 전설과 함께 선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대동아전쟁이 한창 일 때 동네 큰 아이들을 따라 해수욕을 갔다가 서툰 헤엄솜씨 때문에 파도에 밀려 혼이 난적이 있다.
지금은 제주관광「코스」의 하나로 명소가 되었지만 요즘 수인같이 제주땅에 갇혀 있는 내게 용두암은 별다른 시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약력>▲38년 해주출생 ▲외대불어과졸 ▲『문학과지성』을 통해「데뷔」 ▲시집『제주바다』 ▲현재 제주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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