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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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몇년 전 미국의 한「칼럼니스트」는 영국을 『키득키득 웃으면서 침몰하는 배』라고 표현했다.
영웅적인 행동보다도 절망의 순간을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일화들을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영국인특유의 기질을 사촌간인 미국인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28일밤의 영국의회는 숨가쁜 긴장이 감돌았다. 표결 마지막순간까지 노동당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1표 차나 가부동수로 교착될 것이라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은 저변에만 깔렸을 뿐 표면에서는 끊임없는 농담과 웃음소리, 장난기어린 야유등이 울렁거렸다.
하오2시30분에 개원해서 표결이 시작된 밤10시까지 오랜 시간을 전례에 따라 불신임안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었다.
재미없기로 이름난 「대처」보수당당수가 연설을 마쳤을 때 의외로 노동당좌석에서『그걸로 끝내긴가? 좀 더, 좀 더』라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시시한 연설이니까 오래할수록 노동당이 오히려 유리할 것이라는 뜻을, 응원을 가장한 야유로 표시한 것이다.
속이 탔을 「캘러헌」수상은 시종 시치미를 때고 농담으로 점철된 연설을 했다. 소수 정당이 보수당의 불신임공세에 합세한 것을 그는 이렇게 꼬집었다.
『역사이래 칠면조가 「크리스머스」를 당기자는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위기에 직면한 수상답지 않게 호기에 찬 연설을 마친 「캘러헌」수상에 대해 보수당계 의원들도 사적으로는 「대처」연설보다 훌륭했다고 평가했고 한 동료의원은 『처형장에 선 사람이 총살대를 향해 총을 쏜 사상유래 없는 행동』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불신임표결은 사실 두번 있은 셈이다. 관례에 따라 의장은 표결직전에 큰소리로 『찬성하는 자는「찬성」이라고 하시오』라고 선언했다.
보수당의석에서 우렁찬 「찬성이오」하는 소리가 나왔다. 다음에는 『반대하는 자는「아니오」 하시오』라고 선언, 이번에는 노동당쪽에서 우렁찬 「아니오」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것은 표결과는 관계가 없이 서로 목소리로 먼저 상대방을 기죽이는 영국의회의 오랜 의식의 하나다. 말하자면 출전에 앞선 응원가 합창같은 셈이다.
한 정권의 퇴진과 새로운 정권의 잉태라는 엄숙한 작업이 그처럼 순탄하게「대화적 폭력」만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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