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남자의 뒤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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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04면

#1. 대학 졸업하고 정말 오랜만에 과 동기들이 모였습니다. 머리들은 희끗희끗한데 신기하게도 얼굴은 삼십 년 전 입학 때와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외국어 문학도들답게 대충 예상대로 살고들 있는 가운데 한 녀석이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는 사립고등학교에서 선생님, 그것도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다들 학부모로서 요즘 입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난 애들이 무섭다.”

“그래, 요새 누가 선생님 말 듣겠냐. 다 기어오르려 하겠지.”

“아니, 그런 건 걔네들 입장 조금만 이해해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괜찮아. 문제는 애들이 내 등을 보고 배운다는 거야. 앞모습이 아니라. 가르쳐 보니까 말야, 애들은 선생님이나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더라고. 참 무서운 얘기 아니냐.”

#2. 주말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성인용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를 보고 있는데 이런 대사가 들렸습니다. 매번 투전판 밑천을 얻어 나가는 변강쇠의 뒷모습을 보고도 옹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죠. “그래도 좋네 / 저기 가는 사내 뒤태가 나는 좋아 / 팔자가 사나워서 만나는 족족이 사흘을 못 견뎌 떠났지만 / 우리 변서방은 아니라네 / 술 좋아라 투전질 좋아라 해도 / 날 사랑하시니 나는 참을 만허네.”

남자의 뒤태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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