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우리 마음을 살리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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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27면

나는 ‘바쁘다’는 단어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그에 해당하는 한자어 ‘망(忙)’의 속뜻을 알고 나서부터다. ‘망(忙)’은 ‘마음(心)’과 ‘죽음(亡)’의 조합어로 ‘마음을 죽인다’는 뜻을 지닌다. 나는 이를 두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 사람이 정말로 ‘바쁘게’ 살면 그로 인해 마음이 죽는다는 의미겠다. 실로 얼마나 많은 이가 전력질주하듯 살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있는가. 둘째,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어쨌든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그 말이 실체적 현실 이상으로 마음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뜻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휴가철 초입이다. 말 그대로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맘껏 게으름을 누려봄이 어떨까. 휴가 기간을 가장 이상적으로 보내는 요령은 유다인의 안식일 정신에 있지 않을까 싶다. 유다인이 에누리 없이 지키는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다. 그들은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쉬기 위해 모든 가사일을 금요일 저녁 이전에 다 해치운다. 그러고는 안식일 땐 일체의 노동을 피하고 미리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편안히 쉬게 한다. 안식일에 가장 큰 덕으로 숭앙 받는 것은 ‘게으름’이다.

이는 우리가 배워둬야 할 슬기다. 우리 주변에서는 정작 쉼이 필요한 당사자들이 휴일이나 휴가철에 오히려 더 많은 일거리에 치이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오죽하면 블루 먼데이(우울한 월요일)나 휴가철 증후군이란 말까지 나오겠는가. 쉴 때는 그냥 쉬는 것이다.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다. 황금 같은 휴가철, 게으름의 권리는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말아야 할 게다.

그런데 자칫 게으름도 권태롭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게으름을 즐길 줄 아는 지혜다. 게으름을 즐긴다? 어떻게? 취미에 따라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 으뜸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꼽고 싶다. 책 읽는 재미에 빠지면 심신이 한가로워지는 게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19세기 뛰어난 과학자요, 천문학자인 존 허셜 경의 독서 예찬에서 공감대를 확인한다.

“나에게 기도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청하겠다. 독서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나를 차분하게 해주고, 굳건히 버티게 해주며, 행복과 기쁨의 근원이 된다. …누군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면 독서의 취미를 선물하라. 책을 선물하는 것은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재치 있으며, 친절하고 용감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애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사교장에 데려다 주는 것과 같다.”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독서는 물 좋은(?) 사교장에서 온갖 부류의 명사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담소하는 것과 같다니. 독서가 이러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그에 걸맞은 것은 ‘활자책’이 아닐까. 나는 전자책의 유행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입장이다. 전자책이 엄청난 속도와 편리는 제공하겠지만 사유의 기회는 앗아갈 것으로 염려되기 때문이다. 책 읽는 재미는 밑줄을 그으며 읽을 때 더욱 커진다. 행간에 머물다가, 여백에서 노닐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로 남기고 페이지를 넘기는 즐거움이란!

다시 휴가철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올 휴가철 여행가방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미리 궁리해 보자. 새로운 일거리들만 잔뜩 챙겨갈 것인지, 아니면 책 한두 권 챙길 여유 공간을 남겨둘 것인지.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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