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고 다니냐고요? 밝고 따뜻한 노란색처럼 살고 싶어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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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맨’ 문상철씨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속옷까지 노란색을 즐겨 입는다.

“저 이상해 보여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 그냥 저한테 노란색이 잘 어울리고 밝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기자님 눈에도 제가 이상해 보여요?” 머리카락부터 옷·가방·신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노란색으로 치장한 그가 내게 물었다. “평범하진 않아요.” 다른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애써 누른 채 짧게 답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왜, 무슨 이유로 ‘옐로맨’이 된 거냐고. 그러자 문상철(43)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는 원래 화려하게 프린팅된 옷을 즐겨 입었어요. 그런데 7년 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하나 발견했어요.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래서 색깔별로 모두 구입했죠. 그런데 그 많은 색깔 중 유독 노란색이 마음에 들었어요. 의외로 제게 노란색이 잘 어울리더라고요. 노란색 옷을 입으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그렇게 하나둘 노란색 옷을 사게 됐고,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노란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으니까 양말이랑 신발도 노란색으로 사고 싶어진 거죠. 머리까지 노랗게 염색한 건 5년쯤 됐어요. 그런데 제가 노란색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다니니까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성격 또한 외향적이라 생각하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좀 많이 어둡죠. 어쩌면 그런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수많은 색 중에 노란색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뭐 하나 풍족하게 살지 못했어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집안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죠. 저야 철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어머니는 병이 들더라고요. 마음의 병요. 몸이 아프면 약을 먹으면 낫는데 마음에 병이 드니까 방법이 없대요.

 그래서 어머니는 매일 수면제를 먹었어요.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돌아가셨어요.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대충 제 삶이 어땠는지 아시겠죠?

 뭐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어요.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큰 맘 먹고 세차장을 열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문을 닫은 적도 있었고요.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땄는데 그건 쓸 일조차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살 만했어요. 그런데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서른 살 때 정말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다방에서 일하는 아가씨였는데, 저는 배달을 돕는 ‘카맨’이었죠.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동거도 했는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어느 날엔가 심하게 다퉜고 그 애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어요.

 실제 다량의 수면제를 먹었고요. 그런데 말이죠, 기자님. 막상 죽는다고 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해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정말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거예요. 위 세척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중 가장 큰 생각은 ‘다시는 이러지 말자’였죠. 한 번뿐인 인생인데 스스로에게 상처 내고 살아서 뭐하겠어요?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서 무엇하겠어요?

상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저는 제가 좋아서 이렇게 하고 다니는데 가끔 사람들이 그런 저를 이상하게 쳐다볼 때가 있어요. 쳐다보는 건 그렇다 치고 어르신 중에는 욕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제가 노란색 옷을 입고, 노랑머리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제 모습이 눈에 거슬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냥 ‘저 사람 나름의 행복을 만들며 사는 거구나’하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노란색처럼 밝게 살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 밝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고요. 사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옐로맨’으로 사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어쩌다 제가 노란색이 아닌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하면 “왜 그러냐?”고 걱정도 하시고요.

 어떤 분들은요, “노란색이 아닌 다른 색이 좋아지면 어쩌냐”고 걱정도 하세요. 그런데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노란색만큼 제게 잘 어울리는 색은 찾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노란색은 제 인생의 색이라고요. 밝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노란색처럼 저도 그럴게 살아갈 거거든요. 그러니까 노란색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문씨는 식품업체 배송기사로 일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지역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글=윤현주 객원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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