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안개를 낚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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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등장인물
사내l
사내2
여자

현대

낚시터
무대
안개가 자욱히 끼어있는 낚시터. 가끔 차들이 스쳐가는 소음이 들려오는 걸로 보아 고속도로가 가까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막이 열리면 사내1은 왼쪽에서, 사내 2는 오른쪽에서, 여자는 사내들의 가운데쯤에서 관객쪽을 행해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 잠시동안 세사람은 낚시질에 열중한다.
고속도로의 차가 스쳐가는 소음 크게 들린다. 사내1 흠칫 놀라 낚시대를 낚아챈다. 빈 낚시.
사내1‥제길헐, 이놈의 붕어가 사람을 놀리는 군. (낚시에 미끼를 끼운다)
웬 안개가 이리 극성이지?(안개를 헤치다가 사내2를 쳐다본다) 여보시오. 몇수나 했소.
(사내2 말없이 찌를 응시한다. 사내1은 여자에게 말을 걸려다 용기가 안나는지 그만 둔다.)
사내1‥안개치고는 지독한 악질인데….
(여자에게서 눈길을 돌려 사내2의 낚시대의 찌를 본다.) 거, 붕어가 입질하는 것 아뇨?(다급해 진다)저…저…(얼어섰다 앉았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무얼 하고 있는 거요? 어서 낚아 채지 않고…저…저(자기의 낚시대를 내던진 채 사내2의 자리로 와서 낚시대를 힘껏 낚아 챈다. 빈 낚시.) 늦었군. 입질로 봐서 상당히 큰놈이었는데…형씨는 낚시질을 하는 거요? 잠을 자는 거요?
사내2‥(사내1로부터 낚시대를 빼앗으며)이보시오, 왜 남의 자리까지 와서 야단이요? 형씨와 나는 처음 만났고 낚시질 하는 방법도 틀리지 않소?
사내1‥(멋적어 진다) 그렇군요.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군요. 허지만 낚시질 하는 방법이 틀리다니요? 고기가 물면 낚아 챈다. 그게 낚시질이 아니던가요?
사내2‥(귀찮아서)서로의 눈짐작은 틀리지 않느냐 말요.
사내1‥눈짐작?
사내2‥방금도 형씨 때문에 나의 붕어를 놓치지 않았소?(낚시에 미끼를 끼우며)눈짐작 때문에.
사내1‥실례많았습니다. 처음 만난 분에게.
(사내1 자기 자리로 돌아 온다. 낚시에 미끼를 끼워 던진다. 담배를 꺼내 물고 호주머니를 뒤져 성냥을 찾다가 여자한테로 온다.)
사내1‥성냥 좀 빌립시다.(미안한 듯) 꼭 성냥을 잊어먹고 다닌다니까요. 아니면 담배를 잊고 다니든지…이놈의 정신머리 하고는…. (자기 머리를 두어번 친다.)
여자‥(입술에 손가락을 대며)쉿!
사내1‥(입술에 손가락을 대며)쉿!
여자‥붕어가 오고 있었요.
사내1‥(영문을 몰라)붕어가요?
여자‥(찌를 응시한 채)오고 있다니까요.
사내1‥참 별꼴이군.
(사내1 여자를 힐끗힐끗 뒤돌아 보며 사내2한테로 온다. 담배를 한 개비 권하며)
사내1‥죄송하지만 성냥 좀 빌립시다. 꼭 성냥을 잊어먹고 다닌다니까요. 아니면 담배를 잊고 다니든지…이놈의 정신머리 하고는….(자기의 머리를 두어번 친다.)
(사내2 성냥을 꺼내준다. 불을 켜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사내2의 불을 붙여주는 사내1. 담배연기를 한모금 깊이 마셨다 내뿜으며-.)
사내1‥형씨의 낚시줄은 튼튼합니까?
사내2‥낚시줄이 튼튼하냐구요?
사내1‥가령, 아무리 큰 붕어가 물어도 끊어지지 않을…. 낚시줄이란 그런 것 아닙니까. 붕어어가 물지 않을 때는 멀쩡하다가도 붕어란 놈이 물면 끊어져버리는…난, 낚시줄이 항상 불안하다니까요. 큰 붕어가 물어 낚시줄을 끊어먹지나 않을까 하고…(갑자기)어? 왔군요. 왔어. 어서 채요.
(사내1 낚시대를 낚아채려고 하나 그보다 먼저 사내2 낚시대를 낚아 챈다. 빈 낚시.)
사내1‥늦었군요. 야, 그 붕어 참 날쌘데. 하기야 붕어가 끌려나오다 줄이 끊어진 것보다야 낫죠. (히죽히죽 웃는다)
사내2‥(낚시에 미끼를 끼워 던지며)낚시줄은 튼튼해요. 저 넓은 호수에는 낚시에 걸려 줄 붕어는 얼마든지 있고요.
사내1‥얼마든지 있다? 참 좋은 얘기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붕어들이 낚시를 피해서 놀거든요. 감질나게 입질만 해대다가는…. 이거 원 사람을 놀리는 건지….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붕어들은 약았어요. 게다가 낚시줄은 특튼하지를 못해요.
(사이, 고속도로에서 차가 스쳐가는 소음. 한번, 두 번, 세 번. 그때마다 사내1 흠칫흠칫 놀란다. 사내2는 낚시의 끼만 응시하고 있다. 사내1 자기자리로 돌아오다가 여자의 어깨너머로 낚시의 찌를 바라본다. 갑갑해서-.)
사내1‥저 낚시에 미끼가 달려 있을까요?
여자‥쉿!
사내1‥쉿!
여자‥붕어가 오고 있어요.
사내1‥붕어가?
여자‥어고 있다니까요.
사내1‥그놈의 붕어는 맨날 오기만 하나? 덥석 물지 않고.
(사내1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낚시의 찌를 확인하고는-.)
사내1‥허허허…요놈들 봐라. (여자와 사내2를 향하여)글세 이렇다니까요.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던져놓은 미끼만 뚝 따먹고…. (가슴을 치며)아이구. 가슴이야. (두사람 다 반응이 없는 걸 알자 천천히 사내2 곁으로 다가와서) 저 여자말입니다. 아무래도 창녀같아요.
사내2‥뭐라구요?
사내1‥(힐끗 여자의 눈치를 살피고는) 저 여자 창녀같다니까요.
사내2‥저 여자가 창녀라니?
사내1‥(여자의 눈치를 살피며)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냄새가 난다니까요. 그것도 아주 지독한 냄새요. 언젠가 맡아 본 창녀의 냄새하고 똑 같아요.
사내2‥(심드렁하니)참, 형씨의 코는 별코군요. 그런 냄새까지 다 맡고.
사내1‥틀림없어요. 내기를 해도 좋아요.
사내2‥괜한 얘기….(눈은 찌를 응시. 사내1 여자를 힐끔거리다가는.)
사내1‥형씨는 형씨의 마누라를 사랑하시오?
사내2‥갑자기 마누라 얘기는 왜?
사내1‥마누라를 사랑하냐니까요?
사내2‥그야 마누라니까.
사내1‥사랑한다 이건가요?
사내2‥그야 물론.
사내1‥그렇다면 형씨는, 형씨의 마누라가 만약에 형씨의 마누라가 되지 않았다면 형씨의 마누라가 된 지금의 형씨의 마누라라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사내2‥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사내1‥형씨는 마누라를 믿소?
사내2‥마누라니까.
사내1‥어리석군요. 큰 코 다치겠어요.
사내2‥뭐요.
사내1‥형씨가 낚시질에 열중하고 있을 때, 어떤 사내가 형씨의 마누라를….
사내2‥(화를 벌컥 낸다)여보시오. 도대체….
사내1‥가만, 내 얘기를 마저 들어요. 형씨의 집에는 형씨의 마누라 혼자 집을 지키겠지요?
사내2‥그래서요?
사내1‥여자들이란 혼자 있을 때 위험해요. 형씨의 마누라 혼자 집을 지키면서 심심해 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찾아 왔어요. 월부책 장사라도 좋고, 보형쟁이라도 좋고, 전기 밥솥 장사라도 좋아요. 그럴 때 대개의 여자들은 조금은 무서워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엉뚱한 생각을 잘 하지요.
사내2‥(얘기에 끌려든다)아무리….
사내1‥그런데 참, 기막힌 일이죠. 월부책 장사나 보험쟁이나 전기 밥솥 장사중에서 형씨 마누라의 옛애인이 있었다 이거요. 아니면 옛애인과 닮은 자일지도 모르지요. 여자들이란 과거의 애인한테 약한 법이지요.
사내2‥내 마누라한테는 과거의 애인이 없소.
사내1‥그걸 어떻게 믿어요. 어떤 어리석은 여자가<나한테는 사귀던 남자가 있었어요>하고 고백한답니까.
사내2‥하기야 사내자식치고 그런 고백을 받고도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살 멍텅구리가 있을라고요.
사내1‥안데리고 살아요?
사내2‥안데리고 살지요.
사내1‥형씨는 지금 데리고 살지 않아요?
사내2‥내 마누라는 결코 아니요.
사내1‥마찬가지요. 지금쯤 형씨의 마누라는 옛날 애인을 만나가지고….
사내2‥(어처구니가 없다)그렇다면 형씨는 왜 마누라는 지키지 않고….
사내1‥낚시질을 나왔느냐 이 얘긴가요?
사내2‥그렇지 않습니까? 형씨의 마누라는 지금쯤, 형씨의 마누라의 옛 애인을 만나가지고….
사내1‥웃기지 마쇼.
사내2‥웃기다니요?
사내1‥내 마누라는 지키기 않아도 돼요.
사내2‥믿는 도끼에 발등찍히는 데.
사내1‥그점에 있어서는 안심이죠. 난 외출때마다 밖에서 문을 잠그거든요.
사내2‥밖에서 문을 잠근다?
사내1‥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지요. 열쇠는 내가 가지고 다니고요. 형씨도 잘 알아서 하시오. 마누라 도둑맞지 말고…원래 도둑놈의 낚시줄이란 생각보다는 튼튼하거든요. 허허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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