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노 담화 훼손으로 한·일관계 파탄 내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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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사죄한 1993년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에 대해 검증 작업을 해온 아베 신조 내각이 20일 조사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법조·언론계 등 5명으로 구성된 검증팀은 올봄부터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조사해왔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당시 일본 정부 당국자가 물밑에서 한국 당국자와 문안을 조정해 담화를 작성한 경위가 포함되는 방향이라고 한다. 담화에서 양국 간에 절충이 이뤄진 문안은 위안부 모집 주체와 관련해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담당했다’는 부분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당초 일본 측은 초안 단계에서 ‘군의 의향을 받은 업자’라고 표기했으나 한국 측이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고쳐달라고 요구해 ‘의향’도 ‘지시’도 아닌 ‘요청’으로 타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의 자체 조사와 판단을 기초로 작성됐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실제 담화는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 군인·조선총독부 관계자, 위안소 경영자 등의 증언,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노 당시 관방장관도 지난달 29일 담화에 대해 “무엇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말했다.

 검증 보고서가 이 보도대로라면, 고노 담화의 일부를 한·일 양국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몰고 가려는 꼼수로밖에 볼 수 없다. 그 근저에는 당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나 객관적 자료와 관계 없이 고노 담화를 훼손하려는 아베 내각의 역사 수정주의가 깔려 있다. 고노 담화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더불어 한·일 관계를 떠받치는 근간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입장 표명을 계기로 한·미·일 헤이그 정상회담이 성사됐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회의가 시작됐다. 그런 만큼 아베 내각이 정부 간 협의 내용을 일방적 해석으로 공개해 외교의 근간까지 흔들어가면서 고노 담화를 흠집 내려는 것은 한·일 관계를 파탄 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은 검증 보고서가 몰고올 후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