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도서관, 저작권 침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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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책을 디지털로 저장해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은 작가의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이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 뉴욕 연방 고등법원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작가협회가 하티트러스트 디지털 도서관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디지털 도서관은 저작권물의 공정한 사용에 해당한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하티트러스트는 코넬대·미시간대·위스콘신대·UC버클리 등 미국 80개 대학과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온라인 도서관이다. 2008년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1000만 권 이상의 책을 디지털로 저장해놓고 있다. 하티트러스트의 데이터베이스는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책 본문을 볼 수 없어도 특정 내용이 몇 쪽에 있는지와 특정 용어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는 찾을 수 있다. 재판부는 하티트러스트의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책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변형된 형태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전문(前文)을 검색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하티트러스트가 원래의 책에 다른 목적과 성격을 가진 새로운 것을 더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 내용을 오디오 형태 등으로 전환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인터넷 시대 이후 찾아온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논쟁과 맞닿아 있다. 책이 디지털로 저장되면 대중이 더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저작권 침해 가능성은 높아진다.

 작가협회는 그간 저작권을 보호받는 책들이 디지털로 저장되는 데 반대해왔다. 갈등은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당시 세계의 대형 도서관들이 소장한 2000만 권 이상의 책을 온라인에서 검색할 수 있게 하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작가협회는 저작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법원은 수년간의 심리 끝에 지난해 11월 “구글 북스는 저작권 침해 없이 대중에게 중요한 혜택을 제공한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작가협회는 즉각 항소했고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재판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디지털 검색이 작가들에게 어떤 경제적 손해를 끼쳤느냐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구글 북스는 오히려 책 판매를 증가시켜 저작권자에게 이득이 된다”고 구글의 손을 들어줬다.

 이 문제는 이번 재판에서도 이슈였다. 재판부는 “검색 기능이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디지털 도서관이 어떻게 경제적으로 해를 끼쳤는지 작가들이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책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온라인 도서관 때문인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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