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한국의 산토리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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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호 04면

부산을 여러 차례 다녔어도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나 컨벤션센터가 있는 벡스코, 아니면 자갈치 시장 정도만 들렀던 터라 산복도로란 이름은 생소했습니다. 일에 치여 사는 서울 촌놈에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는 여전히 미지의 저편입니다.

산복도로. 말 그대로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노동자, 해방 후 귀환 동포, 6·25전쟁 피란민, 경제개발기 서민층의 정착지로 산기슭을 가득 메운 판자촌을 뚫고 낸 길을 뜻합니다.

부산시가 4월 1일부터 시작한 ‘산복도로 버스투어’와 감천문화마을 투어를 지난 토요일 일맥문화재단 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일제시대 마구간에서 피란민의 안식처로,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인 매축지 마을과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뜻을 기리는 ‘장기려 더 나눔’, 바라만 보아도 숨이 턱 막히는 ‘168계단’ 등은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이 모태가 되어 형성된 감천문화마을은 얼마 전 시작된 ‘마을미술 프로젝트’ 덕분에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연간 3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 코스가 됐다고 하네요. 재개발을 외치며 무조건 헐어버리는 대신 열악한 주거 환경이지만 벽마다 예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 사람 사는 곳으로 꾸며낸 지역 예술인과 주민들의 꿈이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정신과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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