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진보 교육감들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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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당선 축하합니다. 애쓰셨습니다. 보수 진영의 난립 덕이라는 평도 있습니다만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그렇게만 본다면 우리 유권자들을 너무나 우습게 보는 걸 테니까요. 정당 공천도 없고 기표 번호도 없는 선거에서 누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알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보다는 공약들을 과거보다 꼼꼼히 따져봤을 거란 생각입니다.

 물론 세월호 때문이지요. 세월호 참사가 결국은 학력과 성적만 우선하는, 그래서 출세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배태하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비롯됐다는 걸 국민들이 피부로 느낀 까닭입니다. 부조리의 최대 희생자가 학생들이라는 걸 눈으로 본 결과입니다. 켜켜이 쌓인 사회의 적폐를 없애려면 먼저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는 위기감의 발로입니다.

 분명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뉠 겁니다. 우리 교육감님들의 책무가 막중한 이유입니다. 비전문가가 전문가 앞에서 교육 현안을 논하는 건 외람됩니다. 대신 미국 얘기나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교육위원회가 만들어진 건 1837년 매사추세츠주에서였습니다. 초대 교육장으로 추천된 호레이스 만은 보스턴의 유명 변호사로 주의회 의원과 상원 의장도 겸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모든 걸 다 버리고 교육장에 취임합니다.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지요. “의뢰인의 이익은 다음 세대의 이익에 비해 훨씬 작습니다.”

 이런 사명감으로 교육 개혁에 매진한 그는 ‘아메리카의 페스탈로치’로 불리게 됩니다. 시대가 다르고 교육환경도 다르니 그가 한 일을 살피는 건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교육철학만큼은 시공을 건너 새겨볼 만합니다.

 어느 날 그가 소년감화원 개원식 연설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단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교화가 된다면 여기 쓰인 모든 예산과 노력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참석자 중 한 명이 따졌습니다. “한 명으로는 그 많은 예산이 아깝지 않을까요?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이 변해야 할 텐데요.” 호레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그 한 명이 당신의 자제라 할지라도 말입니까?”

 교육 현장에서 새 역사를 쓰게 될 우리의 진보 교육감님들이 이 한마디를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남이 아닌 바로 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거기엔 이념도 진영 논리도 끼어들 틈이 없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많은 학부모들이 갖는 불안감도 다 기우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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