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휴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활(궁)은 너무 계속 잡아당기기만 하면 쓸모가 없어진다.
탄력을 잃기 때문이다. 사람도 같다. 때로는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로마」사람들은 교외 별장입구엔 저마다 이런 팻말을 하나씩 붙여 놓고 있다."Queti non otio". 쉬기 위해서이지 게으르기 위해서는 아니다-.
독일의 통일과 군비확장 등으로 철혈재상의 소리를 들었던「비스마르크」도 국민들에게 휴식을 가지라고 외쳤었다.『휴식은 노동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일요일이 7일마다 잊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마치 녹슨 기계에 기름을 쳐 주는 것 같다. 지난 한 주일에 때묻은 것을 말끔히 씻어 준다. 영국의 철학자「B·러셀」은 자신이 만일 의사라면『일, 일하고 떠드는 모든 환자들에게 휴일이라는 처방을 써 주고 싶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휴식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선 정숙한 환경이 있어야 하고 마음의 여유 또한 아쉽다. 이들 두 가지가 없는 휴식은 오히려 피로만 더 해줄 뿐이다.
우리는 어디 주변을 돌아보아도 휴식을 찾을 만한 곳이 없다. 자연도, 편리도, 정적도 모두 잃어버렸다. 남은 것은 메마른 산천과 불쾌감과 소란뿐이다.
지난 주말의 연휴인파는 무려 3백만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전 국민의 10분의1이 집밖으로 뛰쳐나와 산과 바다에서 복작거렸다. 부산 해운대의 해변에만 65만 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부산 시민 1백명 중 24명이 이곳에 온 셈이다. 전 시민의 4분의1. TV화면에 방영된 이 해변의 풍경은「파도의 바다」아닌「사람의 바다」같았다.
초복도 지나고 이제 성 하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휴가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두들 난감하기만 한 표정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어디 마음놓고 휴식을 찾을 만한 마땅한 곳이 없는 것이다.
장소만의 문제도 아니다. 설령 장소는 있어도 휴식을 가질 곳이 별로 없는 것이다. 불결한 잠자리, 시끄러운 환경, 딩구는「버스」, 터무니없는 상인들의 횡포. 차라리 집에서 돗자리나 펴고 지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집인들 어디 편한가.
밀집해 있는 집들,「아파트」들, 회색의 벽들.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우리들이 이처럼 생활의 양 아닌 질에 날로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슬픈「아이러니」다.
해마다 여름이 더 무덥게 생각되는 것은 그런「아이러니」의 열의 때문인 것도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