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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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아이스 링크 가장자리로 여섯 살짜리 딸을 이끈다.

(중략)

스케이트를 신은 딸은 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나를 따라온다.

그러다가 발이 미끄러지면

놀라서 나를 꽉 붙잡는다.

(중략)

오늘 딸은 내 옆에서 혼자서도 스케이트를 잘 탄다.

내 손도 안 잡은 채

불안하게 첫발을 내밀며 딸은 말한다.

“아빠가 옆에 있으면 곁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빠가 옆에 없으면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

- 잭 로거우(1952~ ) ‘스케이팅 레슨’ 중에서

오래전 미국에서 살 때 초등학생 딸을 아이스 링크로 데려가 스케이팅 레슨을 받게 한 적이 있었다. 노란 파카와 빨간 모자를 쓴 채 미국 아이들 사이에 섞여 빙판에 겁을 내던 어린 딸이 귀엽고 어설프고 안타까웠다. 싸늘하고 위험한 아이스 링크가 마치 어린 딸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냉혹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며칠 후 딸은 혼자서 제법 능숙하게 얼음판 위를 누비고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성장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시인 잭 로거우(Zack Rogow)의 시는 감동적이었다. 이 세상의 상징인 빙판에서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쓰러지지 않고 현실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머지않아 딸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얼음판 위의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이 시는 험난하고 차가운 세상으로 독립해서 떠나가는 어린 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내 딸도 지금은 성장해서 내 곁을 떠나갔다. 그러나 타국의 빙판에서 혼자 스케이트를 타던 어린 딸의 모습과 이 시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