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안전불감증 '종합세트' 고양터미널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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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는 안전불감증의 종합세트였다. 공사·대피 과정에서 업주·당국 등 각 주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안전불감증의 실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참사였다.

 경찰은 고양터미널의 보수공사를 맡은 업체가 적절한 소방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방화셔터 위치 등 소방구획을 바꾸는 공사를 시작할 때 시공사·발주자는 지방자치단체에 이를 알려야 한다. 지자체는 소방당국과 안전지침 협의를 거쳐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고양터미널 시공업체는 소방당국의 안전지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에 들어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경찰은 현장 직원들이 가스배관을 용접하기에 앞서 가스공급관을 봉인하지 않고, 화재 위험이 있는 용접 작업을 하면서도 불연성 방화포 등의 안전장비를 배치하지 않은 혐의를 추궁하고 있다. 또 시공업체는 공사를 관리하는 감독관을 현장에 상주시키지 않았다.

 화재 직후 조치도 문제투성이였다. 공사 현장인 지하 1층 주변의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사 중 작동 중단은 어쩔 수 없었더라도 화재 직후에는 바로 가동했어야 했다. 유사시에 자동으로 연기를 빼내는 장치 역시 제구실을 하지 않아 유해가스가 여러 층으로 퍼져 나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도 고양터미널은 두 달 전의 안전점검에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고양터미널 할인점·영화관의 대응 자세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불이 나 연기가 들어오자 재빨리 대피방송을 했고 직원들은 침착하게 비상계단으로 손님을 대피시켰다. 소방당국·경찰이 중태에 빠진 사람을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통해 생명을 건진 것도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 덕분이었다. 우리 사회는 이런 교훈을 더 넓고 더 깊게 공유해야 한다. 또 다른 대형 참사가 터지기 전에 기관·기업·개인 모두가 문서의 매뉴얼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안전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