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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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외 여행을 하면서 때때로 당황하는 일이 하나 있다. 전기 면도기에 충전을 할 때면 우선 「플러그」가 맞지 않고, 전압조차 달라 낭패한다. 1백「볼트」 문명권에 살던 사람으로는 여간 난처하지 않다.
좀 친절한 「호텔」방에는「어댑터」(조정기)를 따로 달아 놓은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는 요행에 가까우며, 실제로는 2백20「볼트」가 일상화해 있다. 전력을 높이는데는 이유가 있다. 쉽게 상수도 「파이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수압이 높으면 같은 굵기의 「파이프」이지만 수량이 훨씬 많아진다. 전기의 원리도 같다. 전압과 전류는 비례하며 따라서 전력도 같은 비례로 늘어난다.
1백「볼트」의 전압을 2백20「볼트」로 올리면 똑같은 배전선으로도 전력의 공급을 2.2배 늘릴 수 있다.
전력을 고압화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송·배전의 손실율을 줄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송배전 손실율은 한때 12%를 기록했었다. 요즘은 다소 줄어 10%쯤 되는가 보다. 이것은 일본이나 서독·미국의 2배에 가까운 비율이다. 연간 무려 21억2천1백만㎾H의 전력을 공연히 공중에 내버리는 셈이다. 보통 가정 2백만 가구의 전력 사용량과 비슷하다.
「볼트」를 지금의 1백에서 2백20으로 높이면 그 손실율은 이론상 선진국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운 전원을 개발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1인당 소비량이 10년 전에 비해 10배도 넘게 많아졌다. 가전 제품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전력의 소모는 더욱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전기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미국의 경우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우리의 20배인 9천㎾H (연간)에 달한다. 문명과 전력 소비는 필연적으로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전력의 구조를 바꾸는 일은 시계 바늘을 돌리듯 쉬운 일은 아니다. 가까이는 우리의 일상 용구들까지도 몽땅 바꾸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야말로 과도기의 불편과 번거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압에 익숙치 못한 가정에서 빈번히 일어날 사고들에 대한 대비다.
이미 고압 시설이 되어 있는 서울의 화곡동 지역에서 언젠가 어린이가 플러그에 에 감전되어 생명을 잃은 사고도 있었다. 낡아빠진 전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붕 위에 늘어진 수많은 벌거숭이 전선들을 생각하면 불안감의 고압도 작은 문제는 아니다.
전압을 높이는 일에 앞서 송·배전 시설의 안전화·근대화를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고압 전선을 지하에 깊숙이 묻는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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