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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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양 사람들의 성씨를 보면 대충 그「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가령「스미드」「카펜더」라는 이름은 대장장이(야장)이나 목수를 생각할 수 있다.「카터」라는 이름도「마부」 를 연상하게 한다.
필경 그들의 선조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서 허물없이 그런 성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체코」사람들의 성 가운데는「네예칠레바」(Nijizchleba)라는 것도 있다.『빵을 먹으면 안 돼』라는 뜻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유래는 궁금하나 그 표현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월리엄즈」나「존슨」과 같은 성씨도 흔하다. 그런 성은 아버지의 성에 자손이란 말,「손」(son)을 붙인 경우들이다.「리처드슨」「핸더슨」등 허다한 예가 있다.
「키케로」같은 대 철인의 이름도 정작 뜻을 캐 보면「콩깍지」에서 비롯되었다. 화가의 경우는「픽토르」라고도 했다.「평족」이라는 뜻의「풀로투스」(Plautux)『하나님이 주신』 이라는 뜻의「테오도르」등도 있다.「리치먼드」라는 성은「풍요한 세계」에서 비롯되었다. 「링컨」도「켈트」사람의 말로는『호수 가의 동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씨는 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삼국 사기』에 있는 인명을 살펴보아도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이전에 성씨를 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고구려는 건국초인 1세기 무렵부터 벌써 성을 쓰고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가 그만큼 밀접했던 때문이다.
고구려의 성으로는 고씨를 비롯해 을·예·송·우·우·주·연·명임·을지 등 20종이 엿 보인다. 백제는 신·해·사·연·수·국·목 등 8족을 비롯해 부여·사마·수미 등 20종. 신라는 박·석·김 등 3성을 비롯해 육부의 이·최·정·손·배·설·장 등 10여종.
물론 이 성들은 왕족과 귀족 계급이 주로 썼으며,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동양의 제해권을 잡았던 장보고와 같은 사람도 원래는 미천한 사람으로「궁복」이라고만 불렀었다. 그러나 당을 내왕하면서 성을 갖게 되었다.
이조 성종 때 나온『동국여지승람』에는 우리나라 성씨가 2백77개로 기록되어 있다. 영조 때의『도곡총설』에는 2백98성, 고종 때의『증보문헌비고』에는 무려 4백96종이 나뉜다.『증보…』의 경우는 우리나라고 내의 성씨를 모두 망라하고 있어 많아 보인다. l930년의 국세조사에는 2백50성이 나타나 있다.
지난 75년 경제 기획원의 성씨 조사에 따르면 2백49성.
그래도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성씨의 부심이 별로 심하지 않은 것은 모두 줄기차게 살아들 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가지는 흔들려도 인간 가족의 뿌리는 깊고 단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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