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구를「지음」이라고 한다.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와 그의 음악을 참으로 이해하는 종자기란 사람 사이에서 생긴 말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 높은 산울림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아, 태산과 같다』고 무릎을 쳤다. 백아가 흐르는 물을 거문고에 실으려 하면 『아, 강하와 같다』고 종자기는 탄성을 올렸다. 이처럼 마음으로 공감하는 친구를 후세의 사람들은 지음이라 했다.
『여씨 춘추』에 따르면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었다고 한다. 「백아절현」이란 말은 그래서 생겼다. 벗의 죽음을 애도할 때 쓰는 말이다.
서양의 철학자 「키케로」는 친구를 「알테르·에고」(Alter ego)라고 했다. 「제2의 자기」라는 뜻이다.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친구가 되는 것』이라는 「에머슨」의 말은 인상적이다. 「이솝」우화 속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두 친구가 험한 산길을 가는데 곰이 나타났다. 한 친구는 나무위로 도망가고 다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곰은 엎드러져 있는 사람을 이리저리 건드려 보고 죽은 것으로 알았다. 곰은 죽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위기를 넘기고 나서 나무위로 도망갔던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곰이 무슨 말을 하더냐는 것이다. 쓰러져 있던 친구는 말했다. 『위급할 때 혼자 도망가는 친구하고는 함께 다니지 말래!』
친구가 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공자는『군자는 글로써 친구를 만나고, 친구를 통해서 인을 살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군자는 학문을 통해 교제하고, 교우에 의해 인격을 닦는다는 뜻이다.
최근 어느 교수가 우리나라 대학생을 상대로 교우관계를 조사한 일이 있었다. 절반 이상이 친구가 없다는 응답은 충격적이다.
그런 상황은 이해할만하다. 국민교 시절부터 과외 공부에 매달려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그것은 계속된.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중요하다.
언제 마음을 터놓고 친구를 사귈 겨를과 여유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엔 장벽이 생기고, 사람의 반가움을 실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서양에는 「열쇠 소년」이라는 말도 있다. 「아파트」의 아이들은 목에 열쇠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닌다. 폐쇄된 공간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우리의 현실도. 점점 그런 모양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가정생활도, 학교의 일상도, 그리고 사회의 습관도 모두 폐쇄적이고 개인 중심적이다.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사회. 그것은 사막이나 다름없을 것 같다. 우리의 사회가 사막처럼 삭막해져간다는 생각은 우울하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