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회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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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필리핀」은 7천1백개의 섬(도)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태평양의 변두리에 자리잡은 열대의 기후 속에서 이 나라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이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
그러나 정치는 늘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계엄령이 거의 만성화하다시피 했다. 정치분쟁의 시비는 그렇다 치고, 우선 올망졸망한 섬들에「게릴라」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현실도 만만치는 않다. 이들「게릴라」는 이른바 모택동 주의자들도 있고 회교도「게릴라」도 있다. 이들은 정부에 대항하는 입장에서나 무장을 하고 있는 처지에선 서로 상통한다. 물론 그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회교도「테러리스트」들은 그 동안 적잖게 분란을 일으켰었다. 남부의「민다나오」섬을 본거지로 하고 있는 이들은 걸핏하면 정부군과 총을 맞대고 싸웠다. 지난 74년 2월이래 무려 5천 여명의 회교「게릴라」들이「전사」했다고 한다. 물론 정부군의 피해도 적지 않다
이들이 정부에 불만을 가진 것은 벌써 4백년 전부터 쌓인 원한 때문이다. 16세기「마젤란」이「필리핀」의 중부「셉」도를 발견할 때만 해도 이 지역은 토후들이 다스리는 회교권이었다. 그러나「가톨릭」국인「스페인」이 이 지역에 뻗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오늘날 「가톨릭」교도가 지배적인 것도 그런 연유다.
하지만 남부의 회교도들만은 끝내 버티고 있었다. 「스페인」도 이 남부 지역만은 어쩔 수 없이 자치를 허용해 줄 정도였다.
1946년「필리핀」이 다시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나서도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마닐라」를 중심으로 한 북부의 섬들은 서구의 문물과 함께「개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부의 회교권은 변함이 없었다. 「민다나오」섬의 최대도시인「다바오」엔 아직도 상수도가 없을 정도다. 도로는 더 말할 것 없고 교육·취직에 있어서도 북부와는 상당한 대조를 이루었다.
한편 남부엔 북부인들이 몰려들어 토지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회교도들은 그나마 발 붙일 곳도 없게 되었다.
이들「테러리스트」가「해방」을 외치며 정부군에 대항한 것은 이를테면 이런 불만의 표시였다. 더구나 이들의 배후엔 회교도 산유국인「리비아」까지 한몫 끼어들고 있어서 사태는 어지러워졌다. 기어이「필리핀」정부는 지난 76년「아랍」국가들의 중재로「리비아」의 수도「트리몰리」에서 남부의 회교도와 휴전 협정까지 맺게 되었다.
그러나 회교도들의 잠재적인 불만은 아직도 비행기 납치나 인질 등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번 우리나라의 현지 기술자를 납치, 인질 대금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필경「아랍」국의 어느 누가 중재(?)라도 나서면 풀릴 것도 같다. 우리 기술자가 인질이 되기엔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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