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송인사 개입해 신문을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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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사실상 KBS사장 인사에 개입했음을 밝혔다. 그는 "제청 후 거부가 어려워 제청전 (KBS이사회에) 대통령의 의사표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판단은 이사회의 몫'이고, 지난 정권들의 행태를 살펴볼 때 의사표시가 특별히 지나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 재산인 지상파 방송, 그것도 국가기간방송의 경우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감안할 때 비록 지금까지의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개입은 잘못된 것이다.

KBS사장 인선은 방송법 규정대로 KBS이사회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한국방송공사노동조합도 사장인선 기준 등을 이사회에 개진을 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출근저지 투쟁을 한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도 이사회가 자율적 판단에 따라 제청한 인물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 근거를 대고 제청을 거부해야 임명권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인사개입이 신문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한다. 盧대통령은 KBS 사장 추천과정을 설명하면서 "방송이라도 좀 공정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왜곡되고 편파적인 보도를 상쇄해 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대통령의 인식이 '신문은 적, 방송은 동지'라는 2분법적 언론관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에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넣겠다는 뜻인데 그런 사람이 방송을 맡아 독립적인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것인가. 권력과 동지인 언론은 이미 언론으로서 자격을 잃은 것이다.

盧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도 일부 언론사를 '시장독과점과 족벌언론'으로 지칭,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재차 밝히지만 언론은 객관적 보도를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판단은 권력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국민이 내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잘못된 언론관은 언론자유 자체를 위협하는 것임을 다시한번 엄숙히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