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적금 붓는 재미, 재산 붇는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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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한 푼 두 푼 모아 큰돈을 만드는 일은 직장인들의 커다란 재미이자 희망이다. 예전에는 월급을 받아 주로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증권 계좌 등 금융 상품이 여럿 나와 재테크 방법이 다양하다.

 은행에 일정한 기간마다 불입금을 낼 때 쓰는 낱말은 ‘붓다’일까, ‘붇다’일까. “적금을 붇다”와 같이 ‘붇다’를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붓다’가 바른 표현이다.

 적금처럼 일정한 기간 꼬박꼬박 내는 돈에는 ‘붓다’를 쓴다. “곗돈을 3년간 붓고 나니 꽤 큰돈이 되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생활비를 빼고 매달 대출 이자를 붓고 나면 원금은 갚을 엄두도 못 낸다”에서와 같이 곗돈·이자 등에도 ‘붓다’를 쓴다.

 ‘붇다’는 “재산이 붇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른다”에서와 같이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는 의미로 쓰인다.

 “요즘 부쩍 체중이 불었다” “식욕이 왕성해 몸이 많이 불었다”에서 ‘불었다’는 ‘불다’의 과거형인 듯 보이지만, 이는 모두 분량이나 수효가 늘었다는 의미이므로 기본형 ‘붇다’가 활용된 형태다.

 ‘불다’는 ‘늘었다’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불다’는 “따뜻한 바람이 불다”에서와 같이 바람이 일어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다, “사무실에 영어 회화 바람이 불었다”에서와 같이 유행·풍조·변화 등이 일어나 휩쓸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유리창에 입김을 불다”에서처럼 입김을 내거나 바람을 일으키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우리에게 너의 죄를 낱낱이 불어라” “그는 고문을 이기지 못해 적군에게 결국 아는 대로 모두 불고 말았다”에서와 같이 ‘(속되게) 숨겼던 죄나 감추었던 비밀을 사실대로 털어놓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렇다면 “오래되어 퉁퉁 불은 라면은 맛이 없다”에서 ‘불은’의 기본형은 무엇일까. ‘불다’나 ‘붓다’로 대답하기 쉽지만, 이 역시 부피가 늘어남을 의미하므로 ‘붇다’가 기본형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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