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강한 「수재」- 한미안보협의회 미 수석대표 브라운국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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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럴드·브라운」(50)미 국방장관은 정부와 학계 또는 민간단체에서 모두 필요로 하는 『우수한 지식인이자 핵 전문가』라는 평을 듣는다.

<공과대학장 역임>
지난해 12월 「카터」에 의해 국방장관에 지명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학장으로 있었다. 당시 「브라운」은 대소관계에 있어서 비둘기파적 입장 때문에 강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각료임명을 둘러싸고 현「에너지」담당보좌관 「슐레진저」와 끝까지 경합을 벌였었다.
「케네디」행정부 당시 31세의 젊은 나이로 「맥나마라」국방장관의 보좌관으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면서도 『가장 빈틈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당대의 우수한 전략가이자 실력자였던 「맥나마라」와 핵전략 문제에서 정면충돌했다. 「맥나마라」는 핵 공격을 「미사일」체제에 집중하는 주장이었으나 「브라운」은 유인전략폭격기의 잇점을 강조, 「미사일」- 폭격기 이원체제를 주장했다.


65년에는 「존슨」대통령에 의해 공군장관에 임명되어 4년간 봉직했다. 이때 그는 이번에 「카터」대통령에 의해 보류된 B1폭격기 개발의 초기작업에 깊숙이 참여했으며 또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방법을 개발하는데 목적을 둔 「플라우세어」계획에도 관여했었다.
69년 「닉슨」대통령에 의해 SALT대표로 임명되었다.
국방장관 취임 후 그는 무기개발체계·주한미군 등 중요문제에서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대통령과 군부사이에서 비교적 원만한 조종솜씨를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케네디」때 발탁>
「뉴욕」태생인 그는 「브름코스」공고를 평균 99·52점으로 졸업한 후 「콜럼비아」대학을 2년만에 졸업, 21세에 물리학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다. 그 후 「스티븐슨」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 「롱아일랜드」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는 등 박사학위만도 모두 6개나 된다.
어마어마한 「펜터건」의 주인이라기보다는 학자「타입」인 그는 61년 「케네디」행정부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에는 「콜럼비아」대학을 비롯, 핵무기연구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대학의 「리버모」연구소등에서 핵물리학에 대해 연구해왔었다.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김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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