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뮤직박스] '문라이트 마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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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말이지만 시작한 지 10여분이 흐를 때까지 '문라이트 마일'의 시대 배경이 1970년대인지 깨닫지 못했다. 무고하게 살해된 약혼녀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조는 이미 우체국에 보낸 청첩장을 찾으러 간다. 우체국 직원인 버티가 말한다. "마을에 젊은 남자들이 별로 안 남았어요. 아직 영장이 안 나왔나요?"

그 순간 달빛을 받으며 물 위를 걸어가던 조가 70년대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색찬란한 글램 록에도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70년대가 바로 '문라이트 마일'의 시대였다.

벤저민과 조조가 살고있는 곳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 그들의 옷차림과 마을 풍경은 요즘의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다. TV를 보고 유행음악을 듣지 않는 이상 소도시의 시간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도시의 시간은 아주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문라이트 마일'에서 흐르는 70년대 음악은 추억이 아니라 조와 버티가 즐기던 당대의 음악이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들어도 위대한 명곡들이다.

롤링 스톤스.밥 딜런.밴 모리슨.엘튼 존.티 렉스 등 위대한 뮤지션들의 노래가 시종일관 흐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히트곡은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 영화의 노래들은 마음을 파고든다.

제목을 따온 롤링 스톤스의 '문라이트 마일'은 71년에 발표한 음반 '스틱키 핑거스'에 수록된 곡이다. 블루스와 솔, 록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믹 재거의 도발적인 보컬이 한없이 슬프게 들린다. 반항과 도발로 일관했던 롤링 스톤스의 노래에도 의외로 발라드 풍이 많다.

글램 록의 선구자 티 렉스의 '20세기 소년'과 데이비드 보위의 '스위트 헤드', 관악기와 하모니카 등을 이용해 흥겨운 리듬을 선사하는 슬라이 앤 패밀리스톤의 '에브리바디 이즈 어 스타' 등 활기찬 노래들이 밥 딜런의 '버킷츠 오브 레인'과 밴 모리슨의 '아일 비 유어 러버 투' 같은 포크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

어느 하나도 빠트리고 싶지 않은 이 영화의 노래들에서 굳이 하나를 고른다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커밍 백 투 미'다. 토미 볼린이 노래하는 '커밍 백 투 미'는 지나칠 정도로 애절하지만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꿋꿋하게 슬픔을 노래하며 당당하게 시간에 맞선다.

영화 속 그들이 딸의, 약혼녀의 죽음을 견디는 방식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모든 단점과 약점까지도 인정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린 겨울을 견디려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70년대의 비극적인 정서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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