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호 피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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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8년 1월23일 하오1시45분 미 해군 정보 수집함「푸에플로」호가 83명의 승무원을 태운 채 동해 공해 상에서 북괴 초 계정과 전투기의 위협아래 피랍, 원산만으로 끌려갔다. 23일 밤 미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되어 월남으로 가던 핵 항모「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만으로 회 선케 했다.
25일 미 5공군 전투기 2개 대대가「오끼나와」에서 호산·군산 기지로 이동했고 26일 새벽「존슨」대통령은 공군 및 해군예비병 1만4천6백 명에 대해 현역소집 명령을 내렸다.「존슨」행정부는 북괴 측과 판문점에서 26차에 걸쳐 협상을 벌인 끝에 68년 12월23일 82명의 승무원이 석방됐다.
「푸에블로」호가 피랍 당시 구조되지 못한 이유로는 보고가 늦어 작전이 불가능했으며 접전할 경우 사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존슨」행정부는 당시 월남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극동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외교적인 교섭을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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