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하버드 기부금 "환경파괴 기업 투자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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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버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보유한 대학이다. 지난해 보유 기부금이 323억 달러(약 33조5400억원)로 2위 예일대(208억 달러)를 멀찌감치 제쳤다. 하버드는 이 돈을 기업들에 투자해 불린다.

 이런 하버드에서 2012년 8월 ‘하버드 투자철회(Divest Harvard)’란 학생 조직이 생겨났다. 이들은 “몇백 년간 지성과 봉사의 횃불이던 하버드가 눈앞의 이익을 미래의 생존과 맞바꿔선 안 된다”며 엑손모빌·BP 등 화석연료 생산·거래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하버드는 200대 ‘화석연료 기업’들에 직접투자만 3260만 달러를 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돈을 기후 파괴적 경제활동,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 개발과 정치 로비에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투자철회’는 캠퍼스에서 정기적으로 시위를 벌이며 주장을 알려 나갔다. 학교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이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설득 작업을 벌였다. 이들의 활동이 전국적 이슈로 불거진 건 지난해 10월 하버드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 유명한 드루 파우스트가 학내 공개서한을 통해 투자 철회 불가를 선언하면서다. 파우스트 총장은 “투자 철회는 허용될 수 없고 현명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회사들이 투자 철회로 타격을 입지도 않을 것이고 학교 기금은 사회정치적 변화를 추동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등의 논지를 폈다.

 그 직후 교내에서 지나가는 총장에게 한 학생이 “화석연료 회사가 정치인들을 매수해 기후변화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하자 파우스트는 “그들은 그런 짓 안 한다”고 대꾸했다. 이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갔고 언론들은 그 회사들이 1999년 이후 기후변화 관련 의회 로비에만 20억 달러 이상을 썼다며 비판했다. 마이크 맥긴 시애틀 시장도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하버드가 과거 담배회사 투자 철회를 결정한 일을 상기시키며 기금을 사회정치적 변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 파우스트를 반박했다. 교내 시위는 더 활발해졌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졸업생들의 편지도 빗발쳤다.

 결국 지난 7일 총장이 손을 들었다. 학내 서한을 통해 미국 대학 최초로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 하버드의 투자 결정에 친환경적 자문을 받겠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신재생에너지 연구 기금 2000만 달러를 조성, 교내 관련 연구에 지원키로 했다. 파우스트는 “대학은 미래에 대한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하버드가 투자자로서 온실가스 감축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어조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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