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김동리<작가>】가야산 해인사라고 하면 굉장히 깊숙한 산 속에 들어앉은 고찰같이 생각되지만, 기실 가야산은 그리 높거나 큰산도 아니요, 홍류동천 또한 그렇다.
이것은 대개 가야산 일대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주산인 가야산자체의 크기나 높이보다 산악지대라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이리라. 그밖에 또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그 「다른 이유들」의 하나로는 홍류동구에 있는 농산정 탓도 있지 않을까.
이 농산정은 옛날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고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그야말로 이름뿐인 보잘것없는 조그만 정자다.
고운이 해인사에 은거하며 홍류동 계곡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계곡을 홍류동 입구, 계곡 속에 누운 큰 바위에 홍류동천이라고 새겨진 글씨도 고운의 필적에 틀림이 없거니와, 홍류동을 두고 읊은 시에서도 그의 이 계곡에 대한 사랑은 충분히 나타나있다. 그리고 이 「농산정」이란 정자 이름도 『항상 시비소리가 귀에 닿는 것을 두려워하여, 흐르는 물로 하여금 산을 에워 싸버리게 했다(상공시비성도이 고교유수순농산)』 라고 한 위의 그의 시구에서 따진 것이다.
아마 고운의 신라시대엔 이 해인사의 가야산도 여간한 심산유곡이 아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내가 해인사에 다녀온 지도 어느덧 40년이 넘는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던 해 여름에 들어가서 이듬해 봄까지 머물렀었는데, 거기서 두 번째 당선작인 『산화』를 썼다.
해인사라고 하면 누구나 먼저 팔만대장경을 생각하지만, 지금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보다 더 생생한 기억이라면 가야산 골짜기에 엉켜 있던 머루·다래 덩굴들이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