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주선언」없을 유럽공산당 대회|우여곡절 9년만에 개최…그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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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주섭일 특파원】지난 20개월간 동구와 서구의 비 집권 공산당간의 이견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유럽」공산당 대회가 29, 30일 이틀동안 동「베를린」에서 열린다.
「모스크바」가 북경의 비동맹권 및 제3세계 권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면서「유럽」공산당의 단결이나마 과시하려던 소련의 의도는 일부 동구국가와 현 공산당들의 반발에 부딪쳐 진통을 겪은 끝에 각종 양보를 함으로써 9년만에 대회 개최가 일단 성공한 셈이다.
소련은 당초「유럽」공산당 대회가 아닌 세계 공산당 대회를 열어「모스크바」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서구공산당들의 자주노선에 제동을 걸고「유럽」안보회의를 계기로 동구공산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중공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는 동구 내에서「유고」와「루마니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고「프랑스」「이탈리아」등. 공산당으로부터 외면 당하면서 우선「유럽」공산당대회를 소집하여 그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각국의 반발로 75년 여름에 우선「유럽」공산당 대회만이라도 열려고 했던 계획이 좌절됐다.
「모스크바」는 당 중앙위 서기「카투체프」를「부카레스트」와「베오그라드」에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투체프」는 지난 5월28일부터 4일간「차우세스쿠」를 만나 설득했으며 지난 5일부터 3일간「티토」를 만나 마지막 협상을 했었다.
문제는「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마르크스」이론의 구조까지 포기한「프랑스」등 서구공산당과의 관계에서도 난관에 부딪쳤다.
소련은 대회가 열리지 못할까봐「모스크바」의 손발이 되기를 거부하는 일부 공산당의 자주 노선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래서「유럽」공산당 대회는「모스크바」의 처음 구상과는 변질된 성격을 낳았다는 풀이다.
공동 선언문은『각 공산당의 독립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모스크바」가「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신성한 수도』라는 문귀가 삭제됐다는 것이「르·몽드」지의 지적이다.
소련은『반공주의와 반소주의가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는데 성공』한 것과『소련을 위시한「유럽」공산당이 반공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등의 문구를 대신 넣었다고 동지는 보도했다.
즉『소련을 위시한』이라는 구절에서 소련이 주도권을 표현한 것으로「모스크바」가 만족해야만 했다는 풀이다.
대중공 규탄문이 포함되었는지에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데 노력한다』는 화해의 강조는 들어있다고 한다.
여하간 이번「유럽」공산당 대회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사상 유례없는 수정주의적 대회가 될 것이 분명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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