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보이는 펀드 환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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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코스피 2000 돌파=펀드 환매.’

 최근 몇년간 펀드투자자들이 보여준 패턴이다. 증시가 박스권일 확률이 높으니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적당한 수익을 낸 뒤 빠지겠다는 전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코스피가 2000포인트 근처에서 900선까지 떨어지면서 원금이 반 토막 난 걸 지켜 본 ‘학습효과’다. 지난해 9월부터 외국인이 45일 연속 순매수에 나섰는데도 주가가 상승하지 못했던 이유 역시 차익을 실현하려는 펀드 환매 물량이 6조원 넘게 쏟아져 나온 탓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지난 열흘간 2조2000억원어치를 사들이자 코스피는 장중 여러 차례 2000선을 넘겼다. 그러나 기관이 ‘팔자’에 나서면서 번번이 2000선 안착에 실패했다. 기관은 지난 열흘 새 8618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투신권의 펀드 환매 자금이었다.

 그런데 이제 펀드 환매 물량이 대부분 소진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투자증권이 2004년 이후 코스피 지수대별로 펀드 자금 유·출입을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 동안 코스피가 2000포인트 이상일 때 유입된 자금은 6조6000억원, 빠져나간 자금은 6조4000억원이었다. 범위를 연초 이후로 좁혀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올해 들어 코스피가 1960포인트 이하일 때는 국내주식형 펀드에 1조1000억원이 유입됐고 1960포인트를 넘겼을 때 1조원이 유출됐다. 유입액과 유출액이 거의 비슷해 더 이상 빠져나갈 자금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차익 실현 매물은 대부분 빠져나갔다고 봐야 한다”며 “환매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남은 물량은 최대 3조~4조원 정도”라고 분석했다.

 현대증권 노주경 연구원 역시 “지난해 이후 코스피가 2000을 넘을 때마다 환매가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이제 남은 대기 자금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관은 9거래일 만인 8일 순매수(257억원)로 돌아섰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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