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정치가 공자의 반성문, 그것이 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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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공동대표. 공자의 인(仁) 사상을 재해석해 여럿이 함께 한다는 의미의 ‘연대’로 풀이한 해설서 『좌파 논어』를 펴냈다. 연대를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 가치로 꼽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2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한 구절 한 구절이 왜 이리도 아프게 마음에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패배와 좌절을, 사람들과의 갈등과 가난의 고통 따위를 맛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60) 공동대표가 공자의 『논어』를 두고 한 말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후 42년 만에 다시 읽은 『논어』에 대한 감회다. 1970~80년대 청장년 시절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보냈고, 90년대 이후엔 제도권으로 들어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등을 지낸 그의 지난 세월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땐 우리말 번역본으로만 읽었으나 이번엔 원문 읽기에 도전했다. 한학계 원로 성백효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이 완역한 『논어집주』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주 대표가 그런 느낌을 모아 최근 『좌파 논어』(‘나무, 나무’ 출판사 )라는 다소 자극적 제목의 책을 펴냈다. 전체 20편(篇) 498장(章)으로 구성된 『논어』 원본을 해체해 24개 이야기로 재편집했다. 원본의 3분의 1 정도를 다뤘다. 그런데 논어와 좌파는 그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결합된 것일까.

 3일 오전 주 대표가 지인들과 함께 사랑방으로 활용하는 서울 가회동의 북촌학당을 찾았다. 그는 “공자는 실패한 정치가였으나 그가 만든 당은 훗날 크게 성공했다. 그 당의 강령은 인(仁)이고, 당원은 군자(君子)다”라고 했다.

 -공자가 실제로 요즘과 같은 의미의 정당을 만든 것은 아니지 않나.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했더라면 『논어』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실패해 반성하고, 많은 말을 남기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상을 이뤘다. 훗날 반전이 일어난다. 그의 사후 200년이 지나 한나라 때에 이르면 그를 신봉하는 제자들이 거의 일당독재처럼 정치권을 장악한다. ‘공자당’이라고 할 만하다. 이후 공자의 사상은 법치주의를 강조한 법가와 함께 줄곧 중국의 양대 통치철학이었다.”

 -공자의 사상이 어떻게 좌파와 연결되나.

 “『논어』의 핵심 사상은 인(仁)이다. 498개 장의 10분이 1이 넘는 50여 개 장에서 언급하고 있다. 한데 묘하게도 그 뜻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사심 없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바람직한 세상의 모습, 목숨을 걸고 추구해야 할 정치적 가치 등으로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정리하면 타인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 남을 위해 즐겁게 나를 희생하는 마음이다. 요즘 용어로는 연대(solidarity)다. 연대는, 일방적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변화를 꾀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다. 그런 점에서 공자와 진보는 통한다.”

 주 대표는 “우리나라가 각종 복지정책을 체계적으로 갖추려면 서구 사회민주주의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우리 안에서 그에 걸맞은 사상 전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 사상이 그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동아시아 사상의 원류인 『논어』의 행간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진보적으로 읽어내고 있는 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에게 『논어』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그는 “유연하게 『논어』를 읽을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논어』는 인생의 패배와 좌절, 인간 관계의 고통을 맛본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텍스트”라고 말했다. 공자의 인간적 번민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주대환=1954년 경남 함안 출생. 73년 서울대 종교학과 입학 후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80년대 최대 노동운동 세력인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리더로 활약했다. 현재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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