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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순방 때 오바마가 해야 할 세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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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일구
강일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일본·동남아를 4월 하순에 방문한다. 그는 좋은 카드 패를 들고 있다.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개입을 강화하는 것을 민주·공화 양당 모두 지지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아시아가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응답한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을 필요로 한다. 중국과 관련된 불확실성과 북한이 내고 있는 경보음 때문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개인적인 커넥션이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아시아 회귀’나 ‘재균형’ 전략 운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역 지도자들은 수사(修辭)가 물적 자원과 정치적 의지로 뒷받침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살필 것이다. 미국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능력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미국인의 40%만이 그의 외교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최저 수치다. 미국의 재균형 전략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은 대(對)아시아 경제정책의 핵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협상은 현재 답보 상태다. 특히 일본이 문제다. 미국 정부의 전략은 일본을 굴복시켜 얻어낸 양보를 활용해 TPP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로부터 찬성표를 얻어내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 이후에 말이다. 훌륭한 전략인지 모르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무역 협상 권한을 얻어내기 ‘전에’ 주요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완료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알기에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인들은 자세가 완고하다. TPP 협상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 전, 심지어는 올해 안에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이번 한국 방문 또한 까다로운 문제가 걸려 있다. 미국 재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며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 정부는 TPP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기간에 미국 매체들이 KORUS FTA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한다면 TPP에 반대하는 의회 세력은 실탄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TPP 참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더 힘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환태평양 무역의 실행과 확대가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면 재균형 전략은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은 아태 지역의 미래에 대한 미국의 비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미 행정부는 이 지역의 미래가 미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민주주의, 법치, 무력 사용에 대한 반대와 같은 가치에 기초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신형 대국관계’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 가치 공유를 바탕으로 한 비전을 진흙탕 속에 빠뜨렸다. 중국 정부는 신형 대국관계를 이 지역 질서의 최종적 상태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 구상에서 새 질서의 기초는 복수의 세력영향권과 중·미 양극체제다. 그런 질서 속에서는 미국의 동맹국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미 행정부가 안정과 보편적 규범을 사수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게 된다. 아시아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반드시 비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비전은 중국을 비롯, 이 지역 전체에 개방된 것이지만 비전의 근본 바탕은 미국의 동맹관계와 공통의 가치여야 한다.

 셋째,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활용해 미국이 제공하는 억지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필요하다면 한국 방어를 위해 싸울 의사가 있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게다가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엄청나다. 미 국방부는 지금도 전 세계 나머지 모든 국가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미온적인 시리아 사태 대응, 국방비 삭감을 제시한 미 국방부의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 크림반도 위기를 배경으로 아시아로 향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신뢰성의 적자를 메워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미국의 의지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한국과 그 이웃들로부터 강압적으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핵무기·미사일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이미 중대한 한 걸음을 앞으로 디뎠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간격은 평양에 대한 3국 모두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북한에 압력을 넣을 필요성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현 상태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억지력은 단순히 군사력 문제가 아니다. 억지력은 또한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응하겠다는 국가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억지력은 육·해·공군과 동맹국 간의 합동성(jointness)에 의해 증진된다. 미국과 한국은 합동·연합 지휘체제라는 ‘행운’을 누리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장점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에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다.

 백악관을 엄습한 모든 위기와 정치적 문제를 감안하면,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지역의 자유무역과 강력한 동맹관계에 대해 엇갈리거나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전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수주 내로 오바마 대통령은 혼선을 바로잡을 둘도 없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