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재밌는 설화 캐러 2년간 강원도 누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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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원도 설화는 다른 지방 설화와 달리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이 매력적입니다. 예컨대 수절 과부 설화만 해도 목석처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정욕 때문에 갈등하고 번민하지만 끝내 정절을 지키는 과정을 보여주지요. 효행 설화의 경우에도 상상 속의 동.식물 대신 강원도 하천에서 흔히 낚을 수 있는 붕어.잉어로 부모님의 병을 고쳤다는 얘기가 많아요."

강원도의 지원을 받아 최근 '강원의 설화'1.2권을 펴낸 최웅(57) 강원대 국문과 교수. 그는 "2003년부터 2년간 제자들과 함께 강원도 내 11개 시.군을 구석구석 돌며 수집한 설화 2400여편을 담았다"고 했다.

"집집마다 찾아가 노인들을 붙잡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라며 매달렸어요. 기억을 잘 못하는 분도 있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분도 있어 쉽진 않았습니다." 최 교수는 "그래도 어쩌다 기억력이 좋아 설화를 20여 편이나 술술 풀어내는 노인을 만나는 날이면 신바람이 났다"고 했다.

최 교수는 1983년 학생들의 학술답사를 지도하면서 강원도 설화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95년에는 강원 북부 남북한 접경지역의 설화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이번에 강원도 설화집 발간을 맡았고, 최 교수 자신도 춘천과 원주지역을 맡아 지난 2년간 매 주말 노인들을 만나 설화를 채록하고 정리했다.

앞서 2002년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용역을 받아 강원도 설화 2200여 편을 발굴했던 최 교수는 올해 말까지 강원도 해안 지역의 7개 시.군을 추가로 답사해 1000편 이상의 설화를 추가로 수집할 계획이다.

"책으로 낸 것까지 합쳐 총 6000편의 강원 설화를 캐내는 셈이죠. 이들 설화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본격적인 분석과 연구를 할 생각입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강원도를 상징할 수 있는 문화상품도 만들어볼까 해요."

최 교수는 북한의 강원도 지역에 대한 설화 조사에도 욕심이 난다고 했다. 그는 "직접 조사가 어려울 경우 북한쪽 전문가들이 대신 조사하도록 요청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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