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읽기] 수출이 멈췄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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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호 18면

지난 50년 한국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수출에 중대한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첫째 이상기류는 수출이 정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 초 이후 지금까지 무려 36개월 이상 월평균 수출은 460억 달러 내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간 수출도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28.3%와 19.0% 증가했으나 2012년과 2013년엔 -1.3%와 2.2%로 크게 위축됐다. 2012년과 2013년 수출 증가율은 1990년 이후 역대 4위 및 5위의 저조한 실적이다. 1위는 2009년(-13.9%), 2위는 2001년(-12.7%), 그리고 3위는 1998년(-2.8%)이었다.

품목·지역 가릴 것 없이 부진
둘째 이상기류는 두세 부류의 품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품목에서 수출이 부진하다는 점이다. 지난 2년 동안 수출 증가율이 가장 부진한 품목은 선박(-35.4%), 철강제품(-10.5%), 그리고 정밀기계류(1.3%)다. IT제품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제품의 수출이 부진하다고 보면 된다. IT제품이라고 해서 다 수출이 잘되는 것도 아니다. 디스플레이 패널과 컴퓨터 수출 실적은 2013년 이후 매우 부진하다.

IT품목이 전체 수출의 30% 남짓에 불과하고 비(非)IT품목이 70%를 넘는 점을 생각하면 비IT품목의 수출 부진이 얼마나 우려스러운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결국 2013년 수출이 2.1%, 약 118억 달러 증가했는데 이는 무선통신기기 수출증가(39억 달러)와 반도체 수출 증가(약 68억 달러) 덕분인 셈이었다.

세 번째 이상기류는 중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으로의 수출이 부진하다는 점이다. 일본·중남미·동남아·중동, 그리고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이 부진했다. 2013년 대중국 수출이 115억 달러 증가했으므로 2013년 수출 증가는 전적으로 대중국 수출 증가 때문이라고 봐도 된다.

그럼 왜 2011년 이후 수출이 부진한가. 첫째로 세계무역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무역 증가율은 연평균 7%로서 경제성장률(3.4%)의 배가 넘었지만 2012년에는 무역증가율이 2.0%로 성장률 2.3%를 밑돌았다. 2013년 역시 성장률은 2.9%까지 높아질 전망이지만 무역 증가율은 2.5%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슬그머니 자국 산업 보호장치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G20은 물론 EU도 매달 10개 이상의 보호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선진국 보호주의 회귀도 악재
셋째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자국의 제조업 부흥전략을 위해 진출했던 신흥국에서 자국으로 공장을 회귀시키는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곳곳에서 역(逆)세계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원-엔 환율이다. 원화에 대한 엔화가치(원/엔 환율)의 하락은 항상 한국 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줘왔다. 1995년 4월 이후 1997년 4월까지 2년 동안 원-엔 환율은 22.3% 하락(엔화 약세)했는데, 이 때문에 1995년 30.3%나 증가하던 수출이 1998년에는 2.8% 감소로 반전돼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또 2003년 11월 이후 2007년 6월까지 원-엔 환율은 31.6% 하락했는데 이로 인해 2004년 31.0% 증가하던 수출은 2009년 13.9% 감소세로 돌아섰고, 국내에 미친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의 충격을 더 심화시켰다.

2012년 말 일본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원-엔 환율은 100엔당 1489원에서 1000원대로 32.5%나 하락했다. 이 수치는 역대 변동치 가운데 가장 큰 하락폭이다. 엔화 약세의 속도도 월평균 1.6%로 매우 빠르다. 그 결과 우리의 수출 증가율은 2010년 28.3%에서 2013년 2%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환율이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가 통상 2~3년임을 감안하면 엔화절하 효과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계속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세계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올해 중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이는 수출을 활성화시키는 대책을 선제적으로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뒤에서야 대책이 나오면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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