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클리닉]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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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얼마 전 엄마가 켜놓은 컴퓨터를 쓰던 중 못 볼 걸 보고 말았어요. 엄마에게 애인이 생긴 거예요. 이 일을 어쩌면 좋지요?

컴퓨터를 쓰던 엄마가 이모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한동안 받고 있었어요. 그 틈을 이용해 친구에게 온 제 e-메일을 확인하려다가 그만…. 화면에 떠있는 엄마의 e-메일을 호기심에서 살짝 열어봤어요.

메일 제목이 '사랑한다''보고 싶다''그립다'등등이었어요. 처음엔 아빠가 보내신 것인 줄 알고 무심코 지나치려 했는데 '아빠와 엄마의 사랑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나를 살짝 클릭했어요.

*** 잠도 안오고 공부도 안돼

그런데 다른 남자가 엄마에게 보낸 e-메일이더라구요. 황급히 메일을 닫고 아직까지 속앓이만 하고 있어요.

엄마가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사용하신 지 1년쯤 됐어요. 컴맹이던 엄마가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다른 친구를 사귀는 줄은 알았지만 애인이 생겼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뒤늦게 생각해 보니 의심이 가는 부분은 있었어요.

근래 저랑 언니에게도 무관심하고 집안 일에 무관심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제게 너무 자주 전화를 해 귀찮았는데, 요즈음에는 그것도 별로 없고, 집안을 잘 치우지도 않는 것 같아요.

외출도 많아졌구요. 아버지랑은 별것 아닌 일로 자주 말다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의심을 했지만 '설마'하고 있었는데….

*** 소문난 단란한 가정인데

엄마의 e-메일을 보고 난 뒤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훔쳐 봤어요.'역시'더군요.'메일 읽으셨나요?''지금 당신을 생각합니다'등등.그리고 엄마의 발신 번호를 눌러보니 어떤 번호에 하루 서너 차례는 꼭 전화를 했더라구요. 그래서 그 번호로 몰래 전화를 했지요. 남자였어요.

어제는 친구랑 영화관에 갔다가 결국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보고 말았어요. 엄마가 어떤 아저씨랑 극장 매표소 앞에 나란히 서서 표를 사더라구요. 저는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화장실로 피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누구냐?''뭐냐?' 묻고 싶었지만 친구들에게도 창피하고 너무 겁나고.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도 몰라요. 부랴부랴 집에 왔는데 엄마는 한 시간쯤 후에 들어오셨어요."어디 갔다 오셨어요?"라고 묻자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 저녁 먹었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자식 저녁도 안 챙겨주고 어디 쏘다니는 거야"라고 쏴주고 방에 들어와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버렸어요.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로 단란한 가정이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아요. 엄마의 모든 것이 다 가식(假飾)인 것 같아 더 화가 납니다. 이 사실을 저만 알고 있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빠도 불쌍하지만 화가 나요. 조금만 더 엄마에게 잘하고, 집에도 일찍 들어오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에요. 아빠가 원망스럽고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어요.사실대로 확 공개해 버릴까도 싶지만 그렇게 되면 집안이 어떻게 될까 무서워요.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도 오지 않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엄마 얼굴도 보기 싫고 목소리도 듣기 싫어요. 이런 엄마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나요. 저는 어떻게 하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중3 여학생 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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