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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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플루타크」의 영웅전을 보면 추위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도시에서는 추위가 하도 심해서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대로 얼어붙는다고 한다. 얼마쯤 지나면 그 말들이 녹아서 다시 살아나는데, 보통 겨울에 한 말은 다음해 여름에나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여름은 상당히 시끄러웠을 것 같다.
거짓말치고는 「챔피언」급이지만 우리나라의 기후사를 보면 그런 거짓말도 통할법했던 추위들이 없지 않았다. 1933년1월12일 평북 중강진의 기온은 영하 43.6도C를 기록했었다. 이 해의 추위는 「시베리아」에서도 유난스러웠다. 중강진보다는 한 달쯤 뒤지만 2월에「시베리아」의 「오이메콘」지방은 영하 67.7도C로 내려갔었다. 이쯤 되면 우리의 상상을 절하는 추위다. 말에 앞서 생각까지 얼어붙어 다음해 여름에나 녹았을 것 같다.
하긴 세계의 역사를 보면 영하60도C에서 행군을 한 기록도 없지 않다. 물론 병사들은 모두 얼어죽고 말았지만. 1919년11월13일 역시 「시베리아」의 「옴스크」지방에서 「알렉산드르·코르차크」장군의 반혁명군이 그런 추위의 수난을 맞았었다,
우리의 기억으로는 1951년 동난 이듬해의 정월도 몹시 추웠던 것 같다. 그 무렵 서울의 피난민들은 대부분 한강의 얼음을 타고 건너갔었다. 한강이 그처럼 꽁꽁 얼어붙는 일은 드물었다. 하긴 그 당시만 해도 겨울 빙상체육대회를 한강에서 열었었다.
공식기록을 보면 1931년이래 전국적으로 가장 추웠던 겨울은 l944년 말부터 1945년 초로 나타나 있다. 1935년 말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의 추위도 대단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평균기온이 예년에 비해 2.9도 내지 3.5도쯤 낮았다.
그 반면에 따뜻한 겨울도 없지 않았다. 「지독한 겨울」이 지난 1948년 말부터의 겨울은 예년에 없이 포근했었다. 서울의 경우 예년보다 평균기온이 3.4도나 높았다. 1958년 말의 겨울도 역시 그랬다. 1970년대 초의 한 두 해도 포근한 편이었다. 한강의 결빙을 볼 수 없었다.
요즘 대한을 앞둔 우리나라의 기온은 전국에 걸쳐 영하를 기록하고있다. 서울은 20일 새벽 영하17도C나 되었다. 춘원은 그의 소설 속에서 추위 속을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을『동그랗다』고 표현했다. 정말 총총걸음을 하는 시민들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일선장병들이 초소를 서고있는 전방의 영하 30도C의 추위에 비하면 이 몸은 참을만하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마저 춥지 않도록 저마다 인정 있는 생활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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