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유전지대는 신라때 땅불 난 곳|역사기록에서 본 유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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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에서의 유징은 이미 8백여년 전의 고문헌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서기 1145년에 편찬을 끝낸 『삼국사기』를 보면 곳곳에 그런 징조들이 서술되어 있다. 우선 『땅에서 난데없이 지화가 일어났다』는 기록 등이 그 한 예다. 이 문헌의, 본기 제1 진평왕조를 보면 『삼십일년, 춘정월, 모지악 하지소, 광사보, 장팔보, 심오척. 지십월십오일 멸』이라는 귀절이 있다. 폭 4보에 길이 8보·깊이 5척의 땅이 정월부터 타기 시작해 10월15일에 꺼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모지악」이 어디냐는 것.
이병도 박사(학술원 회장·국사학자)의 설명에 따르면『어느 곳이라고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동기정(동쪽 변두리)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동쪽변두리는 영일만쪽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밖에도 삼국사기의 권제3 신라본기 제3 자비마립간조에도 자비왕 21년(서기478년)에 『춘이월. 붉은빛이 비단(필련)처럼 땅에서 외기로 솟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후 1백여년 뒤인 제29대 태종무열왕(654∼661년) 때에도 「동쪽 토함산의 땅이 타다가 3년만에 없어졌다』는 귀절이 나온다.
이들 몇 가지 기록 등에서 나타난 지역이 모두 경주 동쪽인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 같다.
한편 육당 최남선의『동국지명 사전』에선 「송현」이라는 고장에서 세종(1123∼1189)·성종(재위1469∼1494) 때 지화가 일어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현」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해도호부 안에 포함되는 곳이다. 현재의 경북 영해지방이며 송현은 『여지승람』의 기록처럼 그 영해의 남쪽 5리에 있는 고개. 바로 이 기록은 『이조실록』에서도 똑같이 엿보인다.
동양에선 「석유」라는 말과 함께 석지·석칠·석뇌유, 그 밖에 유황유·웅황유·매유·맹화유 등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석유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고문헌에서도 나타나 한층 흥미를 모은다. 중국의 자연 및 박물지로 편찬된『본초강목』(명의 이시진 편찬·1590년간)에도 『고려 땅에서 석유가 난다』는 기록이 있다. 바위틈에서 천수와 함께 섞여 나오는 기름은 마치 고깃국물 같고 빛깔이 검으며 유황냄새가 난다고 했다. 고려 사람들은 등불을 켜는데도 이 기름을 쓰며 물을 끼얹으면 불꽃이 성해진다고도 했다. 이보다 앞서 송조(960∼1279)에 나온 중국 문헌 『오조소세작몽록』(강반지)에도 『맹화유가 고려의 동쪽 수천리에서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개성을 중심으로 동남단이 영일만인 것을 보면 어느 지점을 가리킨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중국의 『황리해어』·『무비지』같은 고문헌에서도 이와 같은 언급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석유에 이미 눈을 떴던들 선진의 횃불은 오래 전에 당겨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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