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배려하는 박 대통령 … 아베보다 먼저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25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변선구 기자]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네덜란드 국빈만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드레스코드에 맞춰 개량한 중국식 정장을 입었다. 옷깃 사이 흰 셔츠가 화이트 타이를 대신했다. [암스테르담 로이터=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23일 오후(현지시간) 정상회담을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첫 일정이다. 한국이 25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과 별도 회담을 한 건 미국과 중국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정부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이창형 국제전략연구실장은 23일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그동안 역사 문제 등에서 공조해 온 중국에 양해를 구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한·미·일 정상회담 참석을 결정하면서 한·일 관계에 있어 북핵 등 안보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 대응한다는 투 트랙 전략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을 통해 정부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중국 포위망을 형성할 것이란 중국 측 우려를 불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미·일 외교·국방장관(2+2) 회담 후 가까워진 미·일 안보협력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지난해 12월 일방적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도 미·일을 향한 일종의 경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도 이런 중국의 우려를 알기에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 참여를 거부하고 미국의 대중국 경제봉쇄망으로 인식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늦추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 가장 큰 외교 시험대였던 방공식별구역 갈등 구도에서 미·중 특정 세력의 편을 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왜곡은 한국이 미·일 대 중국 구도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과거사 문제 등에서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며 일본을 압박하는 효과도 봤다. 중국이 통 크게 하얼빈(哈爾濱) 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치했던 것도 역사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본은 중국이 신흥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미국의 지지 확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집단적 자위권도 중국위협론이 근간에 자리하고 있어 추진이 가능했다. 역사 문제 해결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배경이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는 일본과 궤를 같이하지만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대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방문에 대해 “실망스럽다”라는 표현을 내놓은 점이나 조 바이든 부통령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순방 전까지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한 것은 한·미·일 삼각동맹 복원이라는 미국의 필요성이 작용했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미국이 동북아에서 리더십을 재확인하려고 칼을 빼든 상황”이라며 “일본이 형식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미국이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관계국 간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국면에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아베 총리와 대화 테이블에 앉게 됐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미·중과도 마찰을 빚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우선은 한·일 관계개선이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중국도 상대적으로 긴장할 수 있기에 한국의 대외적 레버리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와 과거사를 분리하는 정부의 투 트랙 전략이 중국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다 중국과 멀어지고, 일본과의 역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일본이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4월로 미뤘지만 역사 인식 자체를 바꿨다고는 보기 어렵다.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계승 발언 이후에도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특보는 23일 “(고노 담화 검증 결과)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과는 안보전략을, 중국과는 과거사 공조를 이끌어내려는 박 대통령의 두 마리 토끼 쫓기 전략이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정원엽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