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남의 농구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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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감독님, 저기 내빈석으로 가시지요. "

"거기서 보면 TV로 보는 것과 똑같아요. 여기가 좋습니다. "

프로농구 SK 나이츠의 최인선(사진)감독은 이제 플레이오프가 벌어지는 경기장의 명물이 됐다. 늘 코트 가까운 곳에서 뭔가를 메모하면서 경기를 관전한다.

정규리그에서 꼴찌를 하는 바람에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으니 상위팀 경기를 보고 배우겠다는 뜻일까.

시즌을 마친 감독들은 대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최감독은 경기장을 순례하고 있다. 농구계는 말이 많은 곳. 최감독이 화제에서 빠질 리 없다. 일부에서는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고 칭찬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밑천을 다 잃고 남의 판을 기웃거린다"고 비웃는다.

물론 다양한 분석이 뒤따른다. 대개는 올 시즌을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최감독의 '재계약을 위한 노력'으로 본다. SK 나이츠나 새 감독을 찾는 다른 구단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자리를 골라 앉는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라고들 한다. 대개 감독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남의 팀 경기를 관전한다.

농구계에서 최감독은 '생존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는 트레이닝 테크닉이나 전술개발 능력을 인정받는 감독은 아니었다. SK 나이츠로 자리를 옮긴 후 치른 경기를 지켜본 기아 구단 직원들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감독은 '어찌됐든' 스타들로 가득한 기아와 SK 나이츠에서 감독직을 유지해왔다.

그늘 속에서 살을 불리는 버섯과도 같은 그의 생명력은 '인내'에서 나온다. 자존심을 감추고 '기회'를 잡을 때까지 어떤 수모든 참아낸다. 이런 점에서 스스로 '세일'에 나선 요즘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계산없이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최감독의 숨은 의도는 다음 시즌이 시작될 즈음에야 드러날 것 같다.

대구=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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