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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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해철 (1956~) '밤' 부분

우리는 깨끗해져 있었다
가을과 드리워진 그늘 그리움에 대해서
레바논 혹은 캄보디아
그리고 어느 오월
서로 사랑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세상의 끝과 휴전선 아이들의 미래
만남과 삶에 깃든 신의 서정
쓸쓸한 한 여인을 위한 가슴아픔
여러 장 단풍잎 같은 이야기로
밤이 깊었으므로

우리들은 이제 말하지 않는다. 이라크의 한 아이가 '내가 바로 당신이 죽이려는 아이입니다'라며 먹포도 같은 눈을 끔벅이는데도, 이라크의 병사가 두 팔을 머리에 올려 손가락을 깍지 끼고 사막의 자기 조국을 걸어도. 한마디 말에도 이웃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넘치고, 모자라는 자신의 삶에 대한 싸릿대 회초리가 뜨겁던 사람의 말들은 어디로 갔는가!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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