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남의 말 귀담아 듣는 토론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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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사극을 보면 권위나 체통 때문에 갈등 해소의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될 일을 "가서 이렇게 아뢰어라" 라고 하인에게 전한다. 장소를 옮겨 "이렇게 전하랍신다"하면 다시 그쪽에선 "그건 아니 될 말이라고 가서 여쭈어라" 하는 식이다.

시간 낭비뿐 아니라 오해가 증폭되는 게 문제다. 이런 일들이 조선시대 궁궐 안에만 있지 않고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벌어진다. 다채널.쌍방향은 모니터 안에서만 벌어지는 기술개량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예술이 되려면 인간의 호흡과 서로 맞닿아야 한다.

MBC TV 제작2국(구 예능국)이 벌이는 의미 있는 실험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7일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의미와 현주소'라는 세미나에 이어 이달 13일에는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중심으로 연예인 짝짓기 프로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학자는 학자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제작진은 제작진대로 갈 길을 '묵묵히' 간 것이 예전의 모습이었다.

나는 첫 번째 세미나의 사회를 맡았다. 방송학자.기자.시민단체 대표 등이 무거운 표정으로 제작진과 마주앉았다. 토론의 달인들이 만난 게 아니므로 재주로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는 애초에 없었다. 강헌 교수는 "공중파 방송에서 음악프로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로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개인적으로 나의 처지와 소신 사이에 갈등이 없지 않았다. 문제의 음악프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책임 PD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PD로 일할 때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과 나름대로 대화를 가져보려 애썼다. 곤욕스런 대면이 종종 있었다. 학자 중 일부는 "저는 그런 프로를 좋아하지 않지만"이라고 하여 미리 기를 죽이려 든다. 그때마다 '저도 그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지만'이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심지어 "저는 그 프로를 본 적이 없지만"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참 갑갑했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과 전국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토로한 그 모욕감을 나도 이따금 느꼈다.

'우정의 무대'가 인기를 끌 때 그 프로가 군의 위상을 무너뜨린다는 보고서를 낸 군장교가 있었다. 나와 열띤 토론을 벌인 후 그는 나(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고 나는 그(직업군인의 심기)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는 오락마저도 군인다워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나는 오락은 오락일 뿐이라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만나 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났고, 그와 나는 친구가 되었고, 그 프로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방송되었다.

'천생연분'에 관한 토론을 마친 후 성공회대학의 최영묵 교수는 "오락적 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비판한 경향이 있었다"(PD연합회보 3. 19일자)고 반성(?)했고 제작진은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토론에서는 말하기 내용보다 말하기 방식 때문에 곧잘 대화가 중단되는 걸 목격한다. 황희 정승은 다툼을 벌인 두 사람을 "모두 옳다"고 판결 내린 후 "그런 판단을 한 나도 옳다"라고 말했다. 두 가지 처지(PD와 교수)를 다 겪어보니까 나도 이제 황희 정승을 이해하겠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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