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제자·이은상|쿠시나가라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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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비록 여행중의 때묻은 옷이지마는 옷깃을 가다듬고 「니르바나」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모신 불상은 불타가 열반에 들던 그 모습대로 누워 계신 상이었다.
머리를 북으로 하고 얼굴을 서쪽으로 향한 채 바른편으로 누워 계신 모습이었고 그 불상의 키는 20척이나 되었다.
나는 아무 것보다 불타가 꽤 이같이 바른편으로 누워 세상을 떠났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 중아 함경에 있는 「사자와 법」이란 것을 생각해보았다.
불타와 제자 아난과의 문답-
『아난아! 너는 마땅히 사자 눕는 법대로 해라.』
『세존이여! 사자가 어떻게 눕나이까.』
『아잡아! 짐승의 왕 사자는 낮에는 먹이를 위하여 나다니고, 다닌 뒤에는 굴속으로 들어오느니라. 그리고 갈 때에는 발을 포개고 꼬리는 뒤로하며 바른편 옆구리로 누워 자느니라.』
불타는 이같이 제자들에게 눕고 앉는 법까지를 세심하게 타일렀던 것이 어니와, 그러므로 불타 자신이 명소부터 그같이 누웠던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열반에 들던 때에도 역시 같은 모습을 지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된다.
이곳「니르바나」사원에 모신. 누워 계신 불상 앞에는 길다란 상이 놓여 있고, 그 상위에는 이 절 뜨락에 있는 오색 꽃들을 수북이 따다 놓고, 참배자들로 하여금 그 꽃을 불타의 가슴 위에 공양하게 하는 것이었다.
꽂은 범어로 「푸스파」라 하며, 한문 경전에 보서파라고 적힌 것이 바로 꽃을 이름이거니와, 꽃은 불교에서 이르는바 육종공양물 중의 하나로, 자못 중요하게 헤아리는 것이다. 대일경소에는 『꽃이란 자비한 속에서 나오는 것이요, 부드럽고 아름다운 뜻을 지녔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누그럽게 한다』하였고, 그래서 무량수경에 『꽃을 흩뿌리고 향을 태워 불타에게 공양한다』고 했거니와, 꽃을 드리는 것(헌화)과 꽃을 홑뿌리는 것(산화)이 모두다 공양이 되는 것이니, 우리 신라 경덕왕 때의 시승 월명사가 산화가를 불렀던 것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절 주지에게 상위에 놓인 오색 꽃 이름들을 물어 보았다.
세 빨간 꽃은 「배젠티」꽃이오
연분홍 꽃은 「하비스가스」꽃이요
흰 꽃은 「간네이」꽃이요
자주 빛 꽃은 「배건벨리야」꽃이라 했다.
자비한 모습 앞에
합장하고 섰노라니
바로 이 순간
님이 열반에 드시는 양
나조차. 2천5백년 전
옛사람 된 듯 하오이다
새빨간 「배젠티」꽃
연분홍 「하비스가스」-
오색 꽃 고루고루
님의 가슴에 얹어드리고
웃음 띤 얼굴을 보다
나도 따라 웃습니다.
나는 다시 문득 흑씨범지(수행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흑씨범지경과 오등회원 등에 적혀 있는 유명한 「방하차」의 이야기다. 「방하차」이란 「놓아 버리라」는 말이다.
어느 때, 흑씨범지가 두 손에 합환목과 오동나무 꽃을 쥐고, 불타에게 공양하려하자, 불타는 그를 불러 그것을 「놓아버리라」 (방하차)하므로 범지는 왼손에 들었던 꽃을 놓아버렸다.
불타는 또 「놓아버리라」했다. 그래서 범지는 바른 손에 들었던 꽃을 마저 놓아버렸다. 그랬으나 불타는 또 다시 「놓아버리라」고 했다.
두 손에 들었던 꽃을 다 놓아버렸는데, 또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것이었던가.
그것은 더 말할 것 없이 몸과 마음마저 놓아버리라는 것이었다.「나」를 놓아버리라는 것이었다. 일절아유·아상·아집을 놓아버리라는 것이었다. 범지는 「방하차」이라는 한 마디에 참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불타는 자기에게 꽃 공양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빈손, 빈 마음으로 오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이다. 또 그것이야말로 불타의 참뜻을 받드는 참 공양이라는 것이 불타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꽃을 바치렸더니
꽃을 놓으라시네
꽃을 놓았건마는
또 다시 놓으라시네
다 놓고 빈손, 빈 마음으로 가까이 오라 하시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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