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사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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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시아」에서는 19세기께에도 문학작품에 대한 검열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누구의 작품이든지 이 홍역을 치르고나면 보잘 것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작가 「투르게니에프」는 이것을 참다못해 검열관에게 항의를 했다. 이말을 들은 검열관은 오히려 화를 냈다.
『아무리 삭제를 해도 당신를이야 몇마디 안되는 말을 깎이면 그만이지만, 우리들은 당신들의 작품을 깎지않으면 우리의 목이 깎인단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문학도가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시인은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반동시인이란 또 어떤 것입니까.』
『만일 누가 자기를 위한 시를 한편 써달라고 해서 자네가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하세. 그때 자네가 돈을 받았다면 그것이 곧 자본주의야. 만일 그 돈을 우리들이 함께 나누어 가졌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지. 자네가 그 돈을 움켜쥐고 국가를 위해 한푼도 내놓을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은 공산주의. 그리고 이것을 따지고 드는 자가 있다면 반동이야, 알았어?』
필경 우스개소리지만, 소련지식인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다.
「엘리트」란 말은 원래 사회주의의 경향을 가진 학자에 의해 쓰여졌다. 『지배계급』(1923년간)이라는 저술을 남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G·모스카」, 그리고 이보다 앞서 『사회주의적체제』를 저술했던 경제학자 「V·파레토」등이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엘리트」는 「이탈리아」어에서 「선량」이라는 뜻.
이른바 「부르좌」민주주의는 이상적인 환영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사회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엘리트」와 피지배계급인 대중으로 나누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엘리트」의식은 「파시즘」의 지도원리나 「나치」의 인종적 「엘리트」론을 시인하는 역사적인 악몽도 갖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소련사회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지식인은 국가가 사육하는 「지능기계」일 뿐이다.
근착 외지에 기고된 한 영국교수의 논문(작일본지4면)에 따르면 소련의 「엘리트」들은 상당한 사회적 대우와 특혜까지도 받지만, 그 기능은 다만 기계에 있어서 중요한 부품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통제는 그처럼 가혹하다. 말하자면 「엘리트」는 국가에 의해 사육되고 고용되며 억제당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편에서는 「선량」이지만, 그들을 섬겨야하는 대중의 편에선 「선악」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엘리트」의 발상은 바로 민주주의의 허점에 있었지만 「엘리트」의 낙원은 역시 자유사회밖엔 없다는 것은 실로 재미있는 모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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