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경제위기 실체 바로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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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많은 사람이 한국경제를 위기라고 한다. 우리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거시지표에 나타난 우리경제의 수치이고, 둘째는 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그 밖에 이라크 사태 및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간의 긴장관계로 야기된 경제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으나 이것은 경제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 SK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

현재 경제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거시경제정책의 지표인 경제성장률 둔화, 지난 1월과 2월에 발생한 국제수지 적자, 예상치보다 높은 물가상승률, 그리고 고용의 불안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현상은 시장경제를 채택한 모든 나라의 경기변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기변동의 주기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제정책 당국이나 민간 경제주체들은 거시지표에 약간의 이상이 나타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제를 위기로 단정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을 위한 소비촉진 정책과 함께 2000년 하반기부터 급속한 가계부채의 증가는 소비수요를 증대시켜 경제성장률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에 이것은 부실 가계를 양산했고 이로 인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기관이 가계대출을 억제하자 소비수요가 축소됐다. 가계의 소비수요 감소와 대내외 여건이 기업의 투자전망을 불확실하게 하므로 투자수요도 증가될 수 없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결정요인인 소비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고용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과 2월 국제수지 적자는 국제유가 상승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이미 이라크 사태로 인해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만 직면한 어려움이 아니라 원유를 수입하는 모든 나라에 동일한 부담이 된다.

국제유가의 변동은 한 나라의 경제정책 테두리 밖에 있다. 이라크 사태는 원유의 수입가격 인상뿐 아니라 세계경제 성장률을 둔화시켜 우리의 수출증대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수출은 줄고 원유 수입량이 축소되지 않는 한 수입은 증가해 국제수지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수지 적자 규모는 1천2백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을 고려할 때 크게 우려할 대상이 아니다.

물가의 경우 국내 소비수요가 크게 감소했음에도 예상치보다 상승률이 높지만 이것 또한 국제원유가 상승으로 인한 해외요인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국제유가 변동에 적응하는 방법 이외에 정책대안이 있을 수 없다. 이상의 거시지표 변동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시지표에 근거한 경제위기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경제구조와 관련한 경제위기 요인은 아직도 한국경제에 상존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SK그룹의 분식회계 사태는 우리기업들의 구조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관련 외신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여론은 분식회계가 과연 SK만의 문제인가로 모여지고 있다. 정부는 1997년 12월 이후 IMF사태의 원인이었던 부실한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에 역점을 두고 추진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거시지표의 호전으로 중단됐다가 2000년 9월부터 금융부문.민간기업.공공부문.노동시장을 대상으로 다시 추진됐으나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사태 이후 미완의 상태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됐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 정책은 지난 5년간 경제의 장기적 안정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우리경제에는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반복될 수도 있다.

*** 부양책 의존한 日전철 경계를

경제정책 당국은 현 경제상황이 경제 내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인지, 경제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분명히 구분해 신중하고 실효성 있는 거시정책을 펴야 한다.

동시에 그동안 미루어진 구조조정에 더욱 노력해야만 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구조조정을 미루고 경기부양에 집착했던 90년대 일본의 경제 운용 실패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