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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의 김연아 세리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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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두어 달 뒤 이탈리아에 갔을 때다. 로마에 유학을 왔다가 주저앉았다는 한인 가이드와 며칠 동행했는데, 마침 화제가 축구로 모아졌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경기 얘기를 꺼냈더니 가이드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한국 선수들은 왜 그렇게 거칠어요? 축구가 아니라 태권도를 했잖아요? 실력이 안 되면 때려도 돼요? 축구 끝나고 일주일을 집 밖에 못 나왔어요. 애들은 학교도 못 갔어요. 한동안 한국인인 걸 숨기고 살았다고요. 요즘도 TV에 나오니까 한번 보세요.”

 가이드의 말은 맞았다. 그날 밤 TV는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를 편집한 장면을 틀어줬다. 깜짝 놀랐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하나같이 맞고 차이고 쓰러졌다. 반칙을 서슴지 않는 건 예외 없이 우리 선수였다. 토티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하는 장면도, 다른 카메라 각도로 보니 송종국에게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비쳤다. 내가 알고 있는, 아니 한국인 모두가 기억하는 그 경기가 아니었다.

 세상은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 스포츠에서 판정이 문제가 되는 건 승부에서 졌을 때, 한 경우뿐이다. 이기기만 하면 판정은 문제 될 게 없다. 불리한 판정은 되레 승리의 감동만 배가한다. 판정을 문제 삼는 건 늘 패자의 몫이었다. 이탈리아가 한국 같은 나라에 진 건, 이탈리아인에게 개최국의 텃세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피겨 스케이팅 판정을 지적하는 해외 언론의 보도가 잇따랐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해관계 없는 제3자의 눈에도 불합리한 무언가가 보였다는 뜻이어서다. 그들이 맞장구칠 때마다 쓰린 속이 더 쓰리다. 이제 겨우 상처에 딱지가 앉았을 따름이다. 혹여 결과가 뒤집혀도 러시아는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판정 덕분에 이겼다고 말하는 승자는 세상에 없다.

 피겨 스케이팅에는 예술점수가 있다. 상대보다 먼저 달리거나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 승부가 명백히 갈리는 경기도 걸핏하면 심판 때문에 시끄러운 판에 피겨 스케이팅은 감히 예술에 점수를 매긴다. 예술이야말로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인데, 찰나적인 인상을 계량화한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다. 예술에 순위를 정하는 행위가 공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했던 거다. 인간은 그 정도로 이성적이지 못하다. 모든 영장류의 팔이 안으로 굽는다. 내 팔도 안으로만 굽는다.

 그러고 보니 또 러시아다. 안현수 때문에 거북했는데 김연아도 러시아다. 하필이면 6월 18일 브라질 월드컵 1차전 상대도 러시아다. 우연치고는 잔인하다. 우리 선수가 골을 넣고 김연아 세리머니를 하는 건 아닐까. 한·일 월드컵 미국 전 때 오노 세리머니의 통렬한 기억도 있으니까. 쉽지는 않겠다. 트리플 뭐라 하는 공중 3회전 점프 정도는 웃는 얼굴로 해야 하니.

글=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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