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슬로프 내려올 때 짜릿함 … 음악적 영감 얻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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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간 바네사 메이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4년 뒤 평창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소치 AP=뉴시스]

세계적인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36)가 올림픽 스키 무대에 도전했다. 바이올린에서처럼 세계 최고는 아니었어도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당당했다.

 지난 23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오메가하우스에서 만난 메이는 “올림픽에 나간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엄청난 짜릿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18일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1, 2차 레이스에서 합계 3분26초97로 67위에 올랐다. 66위 선수보다 11초나 뒤졌지만 그는 두 차례 레이스를 모두 완주했다. 이 종목에서는 출전 선수 89명 중 22명이 완주하지 못했다.

 메이는 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시민권자다.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 그는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태국 알파인스키 대표로 나섰다. ‘바네사 바나코른’이라는 이름으로 선수 활동을 한 그는 지난해 8월부터 15개 국제 대회에 참가해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었다.

20대부터 올림픽 출전을 꿈꿔온 그는 “공연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었다. 많은 관중의 응원 속에 시원하게 내려오는 선수들의 모습이 멋져보였다. 그 짜릿한 느낌을 얻고 싶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꿈을 꿨고, 그 꿈을 실현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소치 올림픽 출전 모습. [중앙포토, 소치 AP=뉴시스]

 메이는 네 살 때부터 취미로 스키를 탔다. 10세부터 세계적인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던 그에게 스키는 삶의 활력소였다. 메이는 “각종 공연 때문에 10대에는 스키를 거의 못 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 삶에 여유를 느끼고 싶었고, 그 수단이 스키였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이 나를 표현하는 존재라면 스키는 나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존재”라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내 본업인 음악적 창의,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첫 올림픽 도전에 메달리스트도 아니었지만 메이는 올림픽 레이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올림픽 당일에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았다. 제발 실격 안 당하고 완주만 하기를 바랐는데 ‘가자, 바네사’라고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정말 행복하게 슬로프를 내려왔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마친 메이는 다시 본업인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간다. 그는 4년 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릴 겨울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인터뷰 도중 네 차례나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그는 “한국은 내게 특별한 나라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해서 한국 팬들이 준 선물, 격려를 잊지 못한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다시 뮤지션으로 돌아가는데다 4년 뒤에는 나이가 많아 선수로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선수로든, 연주자로든 아시아에서 열리는 특별한 대회인 평창 겨울올림픽에 꼭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소치=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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