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헌장과 의|김영식 <서울대 교육대학원 교수·철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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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우등생에게는 상을 주고 운동이 뛰어난 학생에게도 상을 준다. 그리고 예능적으로 우수한 학생에게도 상을 내린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잘 하여도 그는 고등학교나 대학 입학에 어떠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의」로운 일을 하였다고 해서 상을 주고받는 일은 별로 없고, 더군다나 「의」로운 학생이라고 해서 대학에 넣어 주겠다는 학교가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를 못했다. 학교 교육에서는 지·덕·체·예를 강조하고 조화 있는 발전을 하여야만 전인적 인간이 된다고 한다.
「의」는 실제로 덕에 더 가까운 덕목이나 주로 언어 수준에서만 강조되지 행동까지는 강요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의」롭게 행동하고 산다는 것을 경쟁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은 지적 우수성을 경쟁한다. 뛰어난 운동 신경도 경쟁하고 예능도 각종 예능 경연 대회를 열고 경쟁을 한다. 그러나 「의」라는 덕목은 경쟁도 시키지 않고, 아예 경연대회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의」롭게 행동하고 「의」롭게 산다는 것은 인기과목에도 끼지를 못한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의」롭게 살다간 사람 치고 사회에서, 직장에서, 벗에서, 가정에서 까지도 소외당하거나, 백안시 당하거나 박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오직 그들의 벗은 역사 만이다.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 「의」롭게, 더 곧고 바르게 살아가려는 것보다는 남을 쓰러뜨려서까지 자기만 잘되고 잘살려는, 몸이 건장하고 간교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들로써 채워져 가고 있다. 이제는 눈치가 빠르고, 요령이 좋고, 매사에 이해타산을 점쳐 행동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보다도 간교와 기교로써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의」가 설 땅은 점점 좁혀져 가기만 한다. 국민 교육 헌장 선포 여섯 돌을 맞아 「튼튼한 몸과 타고난 재능」 계발에 일로 매진하고 있으나 「의」롭게 사는 한국인의 슬기와 전통, 그리고 자유 세계의 이상의 강조는 헌장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는 「의」롭게 살려는 희귀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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